그는 1982년 이 호텔에 입사해 30년 넘게 외길을 걸어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2010년 G20 정상회담 만찬을 비롯해 굵직한 국가 행사의 총괄책임자로 일했다. 2009년에는 요리인 중 처음으로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한식요리의 대가지만 이 총주방장은 묘하게도 프랑스 요리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어릴 때부터 요리사를 꿈꿨던 그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한 뒤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롯데호텔 양식당에서 경력을 쌓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를 만드는 데 한계를 느꼈다.
“제아무리 프랑스 정통 요리라고 해봤자 타국인 한국에서 만드는 게 본토 요리만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계를 깨달은 뒤 한식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지금 제가 요리를 하는 이유가 됐죠.”
이 총주방장의 대표 요리는 구절판과 등심구이다. 구절판은 9개로 나눠진 그릇에 다양한 재료를 밀전병에 올려 말아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다. 다양한 재료의 조합이 자아내는 정교한 맛뿐만 아니라 취향에 맞게 골라서 즐기는 재미 덕분에 내외국인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명품한우 브랜드 ‘명실상감 한우’ 등심에 불고기 양념을 해 구운 뒤 신선한 야채에 싸 먹는 등심구이는 서양의 스테이크와는 전혀 다른 한국 전통의 맛을 전해준다.
이 총주방장이 꼽는 한식의 최대 경쟁력은 ‘건강함’과 ‘복합적인 맛’이다. 갖은 재료의 맛과 영양학적인 성분이 조화를 이루는 구절판에서 볼 수 있듯, 한식은 다채로운 재료와 양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복합적이고 독특한 맛을 낸다. 특유의 향취가 있어 쉽게 접근하기는 힘들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중독성 있는 풍미에 외국인조차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맛과 영양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한식을 값싼 음식으로 취급하는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한식은 고급스러운 음식입니다. 일본 가이세키 요리는 최고의 음식으로 인정하면서 왜 한식에 대한 자부심은 부족한 걸까요? 저는 사람들의 선입견부터 바꿔놓고 싶어요. 한식도 어떤 음식에도 뒤지지 않는 파인 다이닝이니까요.”
최병일 여행·문화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