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직장인 김지연 씨(31)는 종종 네이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밴드’에 들어간다. 밴드 ‘가족방’에 올라온 소식을 보기 위해서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낳은 딸, 부모님이 겨울 산행을 간 기록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가족방에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이모티콘을 남긴다. 밑에는 ‘축하한다’ ‘즐거운 하루 보내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김씨는 “온라인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학생이던 1996년 처음으로 PC통신에 접속했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PC통신 ‘나우누리’의 애니메이션 동호회에서 활동했다는 그는 “당시 전화선을 통해 ‘남’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신기했는데 이젠 모바일, PC를 통해 다양한 SNS에 접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SNS의 시초는 PC통신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후 포털사이트 ‘카페’, ‘싸이월드’를 거쳐 트위터·페이스북 등 해외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며 시대별로 사랑받는 SNS의 모습은 바뀌어갔다. 국내에서 진화를 거듭해온 SNS를 살펴본다.

관심사를 바탕으로 사이버 모임


파란 화면, ‘삐~삐~치이익’하는 시끄러운 연결음, ‘해피엔드’ ‘여인2’로 대화명이 표시되는 익명성…. PC통신을 매개로 남녀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접속’(1997년)은 온라인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가 시작된 1990년대 모습이 담겨 있다. PC통신 서비스 천리안과 하이텔이 각각 1988년, 1989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나우누리(1994년), 영화 접속에 등장한 유니텔(1996년)이 이어 등장하면서 영화 음악 컴퓨터 스포츠 종교 등 다양한 주제의 PC통신 동호회가 생겨났다. 문자를 조합해 그림을 그리는 ‘아스키(ASCII) 아트’로 장식된 대문을 클릭해 들어가면 자료실 채팅방 게시판 등 텍스트 기반으로 이뤄진 회원들의 활동 공간이 나타났다. 김씨는 “직접 만나서 식사도 하는 ‘오프라인 정모’ 활동도 활발했다”고 기억했다.

1990년대 말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PC통신은 점차 잊히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프리챌’ 커뮤니티와 다음 카페 등의 서비스가 PC통신 동호회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지역이나 회사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도 만들어졌지만 기본적으로 당시의 SNS는 대규모 회원을 운영하는 ‘클럽’ 형태였으며 관심사 기반을 전제로 했다.

오프라인 관계가 온라인 속으로

동창을 사이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의 등장은 오프라인 인맥을 사이버 공간 속으로 옮겨 일상과의 연속성을 지니는 새로운 SNS 형태를 제시했다.

2001년 등장한 싸이월드에서 이용자는 미니홈피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좋아하는 음악과 폰트를 구입해 친한 ‘일촌’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지던 싸이월드 인기는 과도한 유료화 정책, 메신저 네이트온과의 연동서비스 부재 등으로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2009년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며 불기 시작한 모바일 붐에 대응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모바일 기기에 알맞게 140자로 글자 수를 제한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한 해외서비스 트위터가 널리 인기를 얻었다. 싸이월드와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했지만 전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성장한 페이스북도 국내 사용자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다. 자신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에 따라 새로운 소식이 보일 수 있게끔 디자인된 ‘타임라인’ 방식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인간관계 사이의 벽을 허물며 점차 생활과 SNS를 ‘밀착’시켰다는 평가다.

‘아는 사람만’…폐쇄형 SNS의 등장

SNS는 일상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모두가 다 함께 광장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소규모로 만난다. 이를 서비스에 반영한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이 2012년 8월, 지난해 9월 각각 출시됐다. 김씨처럼 가족끼리만 모임을 개설하거나 동창, 회사 팀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SNS가 점차 ‘지인’에 초점을 맞춰오면서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 입지는 축소돼갔다. 취향이 같은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공동체의 특성을 살린 모바일 SNS가 틈새를 노리고 다시 나타난 이유다. 레고 한국만화 스타트업 등 세분화된 카테고리에 따라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빙글’, 키덜트 문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지빗’ 등이 이 같은 SNS다.

관심사를 기반으로 하는 SNS는 특정 목적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사업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