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내기업이 먼저라는 獨 은행가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미국과 영국의 투자은행(IB)들이 화려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금융의 본질일까요?”

지난달 1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프랑크 샤이딕 DZ뱅크 글로벌담당 이사는 ‘독일이 경제 규모에 비해 글로벌 은행이 적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반문했다. 그는 “금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실물경제를 보조하는 것”이라며 “글로벌 은행의 화려함을 부러워하기보다는 국가 전체의 성공 스토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헨리히 크란츠 헤센·튀링겐주립은행 기업금융 부행장도 “한방에 큰 수익을 올리는 영미권 금융사의 실적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에서 보듯 한번 사고를 치면 경제 전반을 뒤흔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물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을 가능한 한 줄이는 신뢰성 있는 금융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시각은 한국 금융권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신년사에서 “금융산업이 해외 진출을 통해 성장동력 산업이 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제조업과 문화산업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듯이 금융산업도 해외로 진출해 세계금융의 지도를 바꿔놓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꼭 박 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골드만삭스’, ‘금융의 삼성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은행과 증권을 막론하고 금융업 안팎의 오래된 화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은행이 제조업처럼 세계무대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목표는 어느새 당연시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 은행가들은 이 같은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샤이딕 이사는 “한국은 이미 강한 수출국가로 제조업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만큼 금융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란츠 부행장은 “은행은 큰돈 벌 기회를 잃더라도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해외 진출에 신경 쓰는 것보다 국내 기업을 어떻게 돕고 관계를 맺어나갈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답은 없지만 한국의 은행들도 ‘업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노경목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