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와 인생은 긴 여행…죽어라고 떠나왔지만 내가 선 자리는 처음 그대로"
신 시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열한 번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을 발표했다. 1936년생이니 벌써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서울 광화문에서 14일 만난 그는 “과연 (시집을) 더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시집을 엮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시들이 많아졌다. 가난과 상실로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이 매일 꿈에 나왔다.
“나이를 먹으니까 많이들 물어봐요.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사실 없어. 전부 고통스러웠을 뿐이지. 아내가 암으로 세상 뜨고, 할머니는 치매고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있고. 그런데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꿈에 그때가 제일 많이 나와요. 뭔가 시를 써서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지.”
고달픈 현실이었지만 그는 ‘꿈’을 꾸며 이겨냈다. 그는 “꿈꿀 수 있다는 걸 축복으로 여겨 왔다”며 “여든의 나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꿈꿀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이번 시집은 하나의 긴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준다. 소년부터 노인까지의 시간, 정릉시장 골목길부터 세계 곳곳의 풍경까지 크고 긴 시공간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시간과 공간들이 “결국 하나”라고 했다. 그는 “죽어라고 떠나왔는데 결국 제자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인생도 엄청나게 달라진 것 같은데 결국 같고. 세상도 상당히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본질을 보면 변한 게 없더라”고 회고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이것이/어머니가 서른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미군 부대를 따라 떠돌기도 하고/친구들과 어울려 먼 지방을 헤매기도 하면서,/어머니가 본 것 수천배 수만배를 보면서,/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것을 보는 것을 죄스러워했다./하지만 일흔이 훨씬 넘어/어머니가 다니던 그 길을 걸으면서,/(…)/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에서/내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갔다는 걸 비로소 안다.’(‘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부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4·19혁명, 5·16, 5·18 등 격변의 현대사를 모두 거쳐온 그는 “역사와 변혁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격변 속에서 희생당하는 삶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재해에서 희생되는 건 항상 착하고 약한 사람들이었어요. 즐거움도 모르고 산 사람들. 그 사람들을 누가 기억하고 기록해주겠어요. 쓰러진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건 시밖에 없겠구나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시집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아쉬울 것도 뿌듯할 것도 없다”고 했다.
“시라는 게 쓸 수 있을 때 쓰면 좋지만 무리해서 쓴다고 좋은 건 아니거든. 시집으로는 마지막일 수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엔 시를 쓰지 않을까…. 안 쓰면 뭘 하겠어요, 할 일도 없는데.”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