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ELS' 1조 쓰나미 덮치나…3년전 삼성전기 ELS에 1억 투자, 손에 쥔 건 3700만원
“삼성전기 주가가 바닥이에요. 직접 투자도 아니고 주가연계증권(ELS)이라 위험하지 않아요. 설마 여기서 또 반토막이 나겠어요?” 2011년 1월 한 증권사 자산관리전문가(PB)가 김진영 씨에게 권한 상품은 이율이 최고 연 23%에 달하는 종목형 ELS였다. 기초자산으로 사용되는 개별 종목의 주가가 계약 시점의 55% 이상을 계속 유지하면 약정된 이율을 받는 조건이었다. 김씨는 고민 끝에 이 상품에 1억원을 맡겼다. 2010년 7월 16만원을 찍었던 삼성전기 주가가 13만원 선까지 빠지면서 손실을 봤던 터라 PB의 조언이 솔깃하게 들렸던 것이다. 3년 만기가 끝난 2014년 1월. 김씨가 손에 든 금액은 원금의 3분의 1 수준인 3700여만원뿐이다.

◆재연되는 2011년의 악몽

14일 한국예탁결제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김씨처럼 종목형 ELS에 투자했다 원금을 날린 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7일 만기 상환된 A증권 ELS 3903호(62.48% 손실)와 B증권 1847호(45.43% 손실)가 ‘깡통 ELS’의 대표적인 사례다. 10일 계약이 만료된 A증권 ELS 3912호(46.30% 손실)도 비슷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손실이 확정됐거나 유력시되는 종목형 ELS 물량을 1조원어치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이 상품들의 계약 시점은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강등을 결정했던 2011년이다. 그해 4월 2230에 달했던 코스피지수가 4개월 만에 1600대로 추락, 단기 낙폭이 컸던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종목형 ELS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장 피해 규모가 큰 상품은 삼성전기 연계 ELS다. 삼성전기는 자문형 랩 열풍이 불었던 2010년 ‘자문사 7공주’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인기를 끌었던 종목. 하지만 2010년 말부터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증권사들은 손실 만회를 노리는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삼성전기를 기초자산으로 한 종목형 ELS를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2011년 상반기에 계약이 체결된 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배 이상 많은 4036억원어치에 달한다. 2010년 하반기부터 2011년 상반기까지로 범위를 넓히면 7000억원어치가 넘는 물량이 판매됐다.

손님을 가득 태운 ‘타이타닉호’의 운명은 가혹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직후인 8월18일 삼성전기 주가는 6만원까지 폭락했고 이 종목과 연계한 종목형 ELS 상품들이 무더기로 손실구간(보통 계약시점 주가의 55% 이하)에 진입했다. 종목형 ELS가 한 번이라도 손실구간에 진입하면 계약시점 주가의 80~90% 선 이상을 회복해야 조기상환 등의 방법으로 원리금을 되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만회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삼성전기 주가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던 것. 이 종목의 14일 종가는 6만7600원이다.

2011년 쇼크…씨 마른 종목형 ELS

2011년의 ‘문제아’ 종목은 삼성전기만이 아니다. 당시 판매된 LG디스플레이, 한진해운 연계 ELS 상품들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기초 자산 종목 주가가 단기간에 반토막 이하로 떨어진 탓이다. 이 두 종목과 연계된 상품의 판매액은 2331억원어치다. 그밖에 효성, LG이노텍 연계 ELS 중 상당수도 손실이 확정된 상태다.

당시 종목형 ELS를 판매했던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장 이번달과 다음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종목형 ELS 중 손실이 난 상품만 업계 전체로 2500억원어치에 달한다”며 “ELS 판매 증권사와 헤지용 상품으로 뒤를 받쳐준 외국계 증권사만 돈을 벌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2011년에 손실구간 진입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종목형 ELS를 외면하면서 유사 상품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2012년 상반기 7조원에 달했던 종목형 ELS 발행액은 지난해 하반기 2조7000억원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이중호 동양증권 연구원은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보기에는 종목형 ELS의 위험이 너무 크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며 “종목형 ELS를 대신할 상품이 개발되지 않으면 ELS 시장이 더 커지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ELS(주가연계증권)

ELS는 코스피200 같은 지수나 개별 종목의 주가 등과 연계해 수익률이 결정되는 유가증권상품이다. 기초자산 유형에 따라 지수형과 종목형, 혼합형 등으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인 스텝다운(step down)형 상품은 3년 만기로 6개월마다 조기상환 기회를 준다. ‘최초 설정가의 55%’와 같은 녹인 배리어(knock in barrierㆍ손실구간)를 두는 상품도 있다.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한 번도 녹인 구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야 약정 이율을 받을 수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