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빵집에 날아온 무서운 편지
요즘 자영업하는 분들에게 호환마마(천연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란 말이다. 최근 부쩍 늘었다는 세무조사 배경에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과세 투명화,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라고 한다. 과연 그런지 우리 동네 빵집 얘기를 해보겠다.

백발이 멋진 사거리 빵집 사장님은 우리 동네 복지관 후원자 중에서도 큰손에 속한다. 매일매일 팔고 남은 빵을 한 아름씩 복지관에 보내주고, 다달이 후원금에 봉사활동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분이 찾아오셨다. 평소답지 않게 어두운 얼굴로 “이런 게 날아왔다”며 국세청에서 보낸 ‘부가가치세 수정신고 안내문’을 보여줬다.

빵집 프랜차이즈 본사의 매출자료(POS)와 가맹점주가 신고한 매출금액이 다르다며 2년간의 세금을 더 납부하라고 보낸 것이다. 확인해 보니 이런 공문을 받은 빵집이 전국에 1000곳이 넘었다. 공문대로 세금을 낸다면 부가세와 소득세, 가산세까지 합쳐 모두 1600억원, 빵집 1곳당 1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금까지 복지관에 기부한 빵, 유통기한 전에 떨이하거나 처분한 빵까지 모두 본사 자료에는 매출로 기록되는데, 세무당국이 이를 고스란히 과세 근거로 삼으면서 이처럼 어마어마한 세금이 산출됐다고 한다. 단순 출납기록이 매매 자료가 된 것이다.

국세청은 본사 POS를 근거로 점주들에게 과세하는 일을 화장품가게 음식점 커피점 등 가맹대리점 전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당연히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은 납세자들에게 공평하다, 정의롭다고 받아들여질 때 저항이 일지 않는다.

지난 국회 세법개정 때 쟁점 중 하나가 중소상인에 대한 조세부담 문제였다. 정부는 과세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음식점, 고물상, 중고차 매매상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를 대폭 줄이려고 했다. 다행히 국회논의에서 상당 부분 막아내긴 했지만,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정부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려 할 것이다. 조세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정부의 재정적자는 계속 쌓여갈 것이다.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동네 빵집에 ‘부가가치세 안내문’부터 보내는 것은 일의 순서도 아니며, 답이 될 수도 없다.

빵집 사장님이 받은 1억원짜리 세금안내문 맨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귀하의 사업이 날로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김현미 < 국회의원·민주당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