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할인 매장인 빅마켓이 작년 말 벌인 병행수입 패딩 할인 판매 행사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한경DB
창고형 할인 매장인 빅마켓이 작년 말 벌인 병행수입 패딩 할인 판매 행사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한경DB
직장인 박진희 씨(29)는 작년 말 미국 브랜드 아베크롬비 티셔츠와 니트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했다. 병행수입으로 들여와 판매하는 제품이어서 직영매장에서 12만8000원 하는 티셔츠는 8만5000원에, 9만8000원짜리 니트는 6만8000원에 30%가량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티셔츠는 밑단에 올이 나가 있고 색깔도 많이 달랐다. 환불을 요구했지만 A사이트는 “수입업체와 연락이 안 된다”며 2주일 넘게 시간을 끌고 있다.

병행수입이 증가하면서 이에 따른 피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정품이 아닌 ‘짝퉁’을 판매하거나 AS나 환불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못 받는 사례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병행수입은 활성화하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업체에는 강력한 사후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병행수입 제품의 정품 여부를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아현동에 사는 지모씨(43)는 작년 11월 해외에서 직수입했다는 골프클럽을 온라인에서 구매했다가 낭패를 봤다.

그는 “타구음이 맑지 않고 거리도 짧은 것 같아 매장에 가져가보니 가짜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환불을 요청했지만 수입업체의 책임이어서 불가능하다는 말만 들었다. 대형마트 등에선 병행수입 통관 인증제도를 통해 진품을 보장하는 QR(Quick Response)코드 부착 상품을 판매, ‘짝퉁’ 막기에 부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병행수입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면서 가짜 제품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정품이더라도 병행수입 제품을 샀을 때 반품·환불하거나 AS를 받는 일이 어렵다는 점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작년 말 국내에서 크게 유행한 캐나다구스 패딩은 정식 수입된 제품을 구매할 경우 ‘평생 AS’가 보장된다. 그러나 병행수입 제품을 구입할 경우 캐나다 본사의 수선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병행수입을 활성화하기로 하고 오는 3월 말까지 ‘수입부문 경쟁 제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병행수입 업체들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청이 2012년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제’를 도입한 이후 대형마트와 홈쇼핑 등이 뛰어들고 있지만 대다수 병행수입 업체는 여전히 종업원 5인 이하 영세 사업자다. 2011년 말 현재 영세 병행수입 업체는 1000개를 넘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뢰도가 높은 기업들이 병행수입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혁 기획재정부 물가구조팀장은 “병행수입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소비자들이 과연 정품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와 사후 서비스”라며 “통관인증제도를 확산하고 병행수입협회를 통해 AS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민지혜/주용석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