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기자 38명 참가…日 기자들, 날 선 질문도

"일본은 아시아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침략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16일 오후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2차 대전 연합군 포로수용소 유적지에서 일제의 잔혹 행위에 대한 증언에 나선 올해 89세의 중국인 리리수이(李立水) 씨는 70여년 전 수용소 인근에 살면서 목격한 상황을 생생히 전하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리 씨는 중국 외교부의 초청을 받아 일제 침략사 관련 취재에 나선 외신기자들 앞에서 당시 '봉천(奉天·선양의 옛 지명)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연합군 포로들이 비인간적인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렸다며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수시로 먹을 것을 건넨 일화를 얘기했다.

부지 면적이 5만㎡에 달하는 이 포로수용소에는 한 때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프랑스 등 7개국 전쟁포로 2천여명이 갇혀 있었다.

리 씨는 "당시 중국 주민은 물론 연합군 포로들이 겪었던 비참한 상황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면서 "일본은 조선, 중국, 동남아를 차례로 침략해 아시아인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고 이런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중국 외교부가 마련한 랴오닝성 일대 일제 침략 현장 취재에는 중국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 일본, 영국, 인도, 싱가포르, 스페인 등 6개국 언론사 기자 38명이 참가했다.

중국 측은 1박2일 간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활동의 첫 취재장소를 선양 시내에 있는 9·18역사박물관으로 정했다.

이 박물관은 일제의 본격적인 중국 침략 시발점이 된 만주사변을 비롯한 일제 침략과 관련된 각종 문물과 자료 80만건을 전시·보관하고 있다.

일제는 1931년 9월 18일 선양 류타오거우(柳條溝)의 남만주 철도를 폭파한 뒤 이를 중국 군벌 장쉐량(張學良) 군대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고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에 나섰는데 이를 만주사변이라고 부른다.

중국은 일제 침략의 잔혹성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1991년 박물관을 세워 애국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천100만명이 넘는 내·외국인이 박물관을 찾았다.

중국 측은 역사 문제 전문가들을 취재 현장에 배치해 당시 상황에 대한 질의응답을 진행하기도 했다.

9·18역사박물관 왕젠쉐(王建學) 연구원은 "중국이 이 박물관을 건립한 것은 중국인과 세계인이 함께 이 진실한 역사를 기억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고 영원히 평화를 소중히 여기길 바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 취재에 참가한 외신기자 가운데 한국기자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 일본기자들은 주최 측에 대해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논란이 된 뒤 중국 당국이 이례적으로 외신기자들을 취재에 초청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산하 외신기자센터(IPC)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매년 외신기자들을 취재 현장에 초청하고 있으며 이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는 통상적인 활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일본기자는 "중국 정부가 마련한 이런 활동이 일본 정부와 정치권에 별다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외신기자단은 17일에는 일정에 따라 랴오닝성 푸순(撫順)으로 이동해 핑딩신(平頂山) 학살 사건 기념관과 전범관리소, 랴오닝성 기록보관소를 취재할 계획이다.

핑딩산 학살은 만주를 침략한 일제가 1932년 9월 16일 푸순시 남부의 한 마을에서 항일 유격대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주민 3천여 명을 모아놓고 총을 쏴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중국 당국은 지난주부터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지린(吉林)성 기록보관소가 찾아낸 일제 종군위안부, 731부대 관련 문서 등을 잇달아 공개하며 일제의 만행을 들추는 폭로전을 계속하고 있다.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sm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