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글씨와 그림은 한 몸"…붓 사용법에서 엿보는 동양의 통합적 사고
[CEO를 위한 미술산책] "글씨와 그림은 한 몸"…붓 사용법에서 엿보는 동양의 통합적 사고
동양화와 서양화의 결정적 차이를 낳은 비밀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붓에 있다. 동양화는 그림을 그리든 글씨를 쓰든 모두 붓을 사용한다. 이와는 다르게 서양에서는 애당초부터 그림 그리는 붓과 글씨 쓰는 펜이 분리된 전통을 발전시켜왔다. 결과적으로 동양은 “글씨와 그림은 하나다”라는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에 잘 드러나듯이 그림과 글씨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혼합되는 현상을 만들어냈고 서양은 양자가 남남의 길을 걷게 됐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축인 중국은 예로부터 그림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렇지만 국가체제가 정비되면서 그림의 표준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해서 상형문자가 탄생한다. 상형문자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겨냥해 점차 부호화·상징화의 길을 걷는다. 전서(篆書)에서 예서(隸書)로, 예서에서 해서(楷書)로의 발전은 그 같은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서는 갑골문 등 고대의 상형문자를 정리한 것이고 예서는 주나라와 진나라 때 행정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이것을 좀 더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해서는 여기에 다시 직선적인 맛을 가미해 단정하게 다듬은 것이다.

부호화는 피할 수 없었지만 한자는 여전히 물체의 형상을 간직하려했다. 그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 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을 표현한 ‘내 천(川)’자, 우뚝 선 산의 모습을 표현한 ‘뫼 산(山)’자는 그 단적인 예다.

결국 문자는 철저하게 회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회화도 순수하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지 못했다. 그 점은 당나라 때의 미술이론가인 장언원의 “글씨와 그림은 한 몸이며 단지 이름이 다를 뿐”이라는 말 속에 압축돼 있다. 이렇게 해서 그림과 글씨쓰기는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며 중국만의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화(畵)라고 하지 않고 글씨를 옮긴다는 뜻의 ‘베낄 사(寫)’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글씨 쓰기(서예)를 예술 장르에 포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대의 화가 고봉한(高鳳翰)의 ‘층설단향도(層雪鍛香圖)’에는 그런 그림과 글씨의 일체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매화는 눈 쌓인 엄동설한에 오히려 그 향기가 더 진하게 발산한다는 뜻을 담은 이 그림에서 화가는 매화의 잔가지나 오른쪽의 초서체 제발을 막론하고 마찬가지 필획을 구사하고 있다. 고봉한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황신(黃愼)의 ‘석류(石榴)’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그림을 보면 석류를 그린 필획이나 그 위에 쓴 초서의 필획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글씨와 그림이 계속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또 있다. 유교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어려서부터 붓을 잡고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림은 나중에 수양의 일부로서 습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형상을 부호화한 문자에는 8가지 필획 운용법이 있었는데 글씨를 먼저 배우다 보니 그 법식이 그림을 그릴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글씨 쓰는 수단과 그림 그리는 수단이 같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피할 수 없었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글씨와 그림은 한 몸"…붓 사용법에서 엿보는 동양의 통합적 사고
안타깝게도 오늘의 우리 예술은 그런 그림과 글씨 통합의 예술 경지를 계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더 이상 붓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씨 그림 통합의 경지에서 살았던 옛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붓과 펜이 분리된 서구의 문화전통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통 회화 쇠락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글씨 쓰는 수단과 그림 그리는 수단의 이원화와 그것에 의해 초래된 이성과 감성의 분리라는 보다 근원적인 현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화동원론에는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바라본 동양문화의 본질이 담겨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