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유주의자 김재익
전쟁 통의 하우스보이, 껑충한 키에 허여멀건한 얼굴, 고2 때 검정고시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 한국은행 입행,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45세에 아웅산 테러로 순국, 경제가 어려울 때 생각나는 첫 번째 인물….

‘5공화국 경제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였던 고(故) 김재익 경제수석의 짧은 이력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소리를 들었던 그는 자신의 전권을 오로지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것’에 쏟아부은 인물이다. 임금 상승을 생산성 증가 범위 내로 억제하고, 환율과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며, 경제 능률 향상을 위해 개방과 경쟁을 주도하면서 정부 간섭 최소화 원칙을 강조했다.

30여년 전만 해도 한국은 자유 시장경제의 토대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은 일상적이었고, 경제의 고삐는 시장이 아니라 정권의 손에 잡혀 있었다. 물가는 급등했고, 저축률은 떨어졌으며, 내수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 경쟁력은 바닥이었다.

그러나 그가 경제수석이 되고 난 뒤 예산은 동결되고 물가가 잡혔으며 개방 경제의 기틀이 닦였다. 강력한 개발독재 체제를 시장경제로 서서히 전환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자유시장주의 사상이었다. 그는 스탠퍼드 유학 시절 신오스트리아학파의 선구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에 눈을 떴다. 반인플레이션과 개방, 경쟁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그곳에서 싹텄다.

귀국 후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미제스의 저서를 복사해 동료와 후배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며 자유주의를 전파했다. 하이에크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도 그였다. 그런 사상적 토대 위에서 그는 수입자유화 등으로 한국 경제의 틀을 바꿔나갔다. 대학생이던 아들이 “왜 독재 정권에 협력하려 하십니까?”라고 항의했을 때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 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했던 그다.

엊그제 ‘김재익 평전’ 출판 기념회에서 현오석 부총리는 그를 “한국 경제사의 큰바위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 그를 국장으로 모셨던 부총리의 회고처럼 그는 자유주의라는 근육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꾼 주인공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남긴 교훈은 뚜렷하다. 자유 민주적 질서와 시장경제 철학이 올바로 서야 경제도 산다는 것을.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