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근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열두 살의 덩치 작은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혼내준 한 살 위의 동네 형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를 건넸다. 두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준 이 사과가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과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작은 소년은 대문호 에밀 졸라, 큰 아이는 사과 그림으로 ‘근대 회화의 아버지’가 된 폴 세잔이다.

세잔은 1839년 1월19일 남프랑스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뜻에 따라 법대에 진학했으나 화가를 꿈꾸며 2년 만에 중퇴했다. 파리로 건너가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반년도 안돼 재능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 건 졸라의 편지였다. 굳은 결심으로 파리로 다시 간 세잔, 살롱전 출품을 목표로 그림을 그렸지만 매번 불합격이었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건 패자부활전, 즉 낙선화가들의 전시회였다.

43세가 돼서야 첫 살롱전을 통과했고, 56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인상파의 즉각적인 화풍을 거부하며 당대 화단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지만, ‘모든 자연현상은 원·원통·원뿔로 표현된다’는 이론으로 야수파 입체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대 화풍을 따르지 않아 ‘미치광이 화가’라는 모욕을 감수해야 했던 세잔. 그의 가치는 1906년 눈을 감은 뒤 빛을 발했다. 1907년 회고전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2011년 세잔의 1895년작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역대 최고가인 2850억원에 거래됐다.

■ 폴 세잔

-1839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출생
-1859년 엑스대 법학과 입학
-1882년 첫 살롱전 통과
-1886년 에밀 졸라와 절교
-1895년 첫 개인전
-1906년 폐렴으로 별세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