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본 44弗, 대만 40弗, 한국 32弗
지난 14일 미국 민간경제조사기구인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2014년 생산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2.3달러로 조사대상 126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 우리가 세계 8위 정도의 무역대국으로 경제의 덩치는 커졌지만 내실은 30위 정도라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 기초가 부실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생산성은 노동투입이 얼마나 효율적인 산출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는 그만큼 비효율적이라는 의미다. 노동생산성이 미국이나 주요 선진국들의 절반 수준이고, 특히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에 비해 더욱 낮다.

일부에서는 국가 부도 위기에 놓인 그리스보다 낮은 노동생산성이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단편적 비교를 넘어 우리 입장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구조적 위기증상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우선 우리의 직접 경쟁국들과의 격차 문제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32달러 수준인데 일본이 44달러, 대만이 40달러 수준이다. 이웃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한국의 노동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명시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위기증상이 이번 조사결과에서 나타났다. 선진국들의 노동생산성은 회복세이거나 크게 퇴보하지 않았지만 브라질, 중국, 인도 등 신흥 경제국가들은 노동생산성 증가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높지 않은 신흥국가들은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힘들고 선진국들은 창조적 요소를 통해 자원 투입을 늘려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후발 주자들을 따돌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최근 노동 생산성 정체가 이웃 신흥국들과 묶여서 자칫 국제적으로 신흥국 경제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제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세계적인 노동생산성 정체에 대해 수요 위축으로 인한 생산 위축의 결과인지 아니면 노동의 혁신적 성과 부족 때문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선진국이 아닌 한국의 경우 적어도 혁신 노력이 없는 자질구레한 대책들은 별 쓸모가 없다. 노동 혁신은 크게 산업적 측면과 기업적 측면에서 모두 필요하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무엇보다도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개방과 경쟁이 필요하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종은 폐쇄적인 자격증으로 방어하거나 아니면 독과점적 이윤을 보장받으면서 자체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동시에 자영업 구조조정을 통한 임금근로로의 전환, 사회서비스업종에서 정부지원책 일변도가 아닌 민간기업의 동시 육성 등이 중요하다.

한편 기업 차원에서는 노동의 유연성이 강화돼야 한다. 노동유연성하면 이전에는 해고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중심을 이뤘지만 노동생산성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의 충실한 활용이 유연성의 핵심이 된다. 단지 장시간 초과근로를 시킨다고 생산성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일하는 방식에서 집중과 효율이 중요한데 높은 수준의 헌신과 기술을 통해 고부가가치 상품과 서비스의 산출이 필요하다. 제값에 팔고 제대로 임금을 주는 전략이다. 흔히 있는 노동이 아니라 혼이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

최근 이런 혁신을 위한 계기가 찾아왔다.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서 장시간 초과근로는 억제될 것이고, 기본급 비중이 늘면서 일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강화될 것이고, 휴일 근로의 억제로 인해 평상시 근로의 생산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근로자는 임금 수준이 올라가는 만큼 생산성 혁신으로 보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들의 자동화나 해외 이전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기업들은 기존 경쟁방식으로는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노동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교육훈련, 유연근무제도, 직무와 성과중시 임금체계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이장원 <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