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조동성 교수 "시작도 끝도 없는게 창조…창조경제는 개념 모호한 게 정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6년 강단서 내려오는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
기말고사 없애고 창업계획서…젊은이들 도전정신 북돋아
'창조적 발상과 따뜻한 나눔' 경영학도에 딱 두가지만 강의
정부·국회, 인구구성비 비례해 여성·청년 정치인 더 나와야
기말고사 없애고 창업계획서…젊은이들 도전정신 북돋아
'창조적 발상과 따뜻한 나눔' 경영학도에 딱 두가지만 강의
정부·국회, 인구구성비 비례해 여성·청년 정치인 더 나와야
한국 경영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학부 교수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외모, 활기찬 걸음걸이, 거침없는 언변까지 어디에서도 퇴임을 앞둔 만 65세 노교수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늘 앞서 걸을 만큼 걸음걸이가 빠르고 경쾌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먼저 달려가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다른 이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리는 배려심을 보여줬다.
조 교수는 1978년 당시 최연소인 29세에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임용된 뒤 36년간 경영학만 가르쳤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효율성보다 예술과 창조, 나눔 등을 더 강조했다.
모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6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섰다는 조 교수. 내달 정년퇴임하는 그를 지난 17일 서울대 경영관에서 만났다.
▷방학인데 요즘도 연구실에 자주 나오나요.
“제 연구실이 612호인데 무슨 의미인 줄 아세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B612라는 소행성 알죠? 어린왕자에게 B612가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나에게 612호도 정말 보물 같은 곳입니다.”
▷36년간 교수를 했으면 때론 지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조효원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교수를 하다 중간에 그만뒀어요. 어머니는 그게 마뜩잖았던가 봐요. 어머니는 제가 교수가 됐을 때 ‘교수로 퇴임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 약속을 지키게 돼 다행입니다. 36년간 재미있게 보내려 노력했습니다. 전공이 경영전략과 경영혁신이라 자주 삶에 변화를 줬어요. 강의도 그랬죠. 2000년 뉴 밀레니엄을 맞아 이전 강의계획서를 모두 버렸습니다. 제 강의에서 기말고사를 다 없앴습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학기 말에 사업계획서나 창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죠.”
▷기말고사를 없앤 건 무엇 때문인가요.
“학생들 때문입니다. 공무원 되고 대기업 가려는 학생들만 넘쳐났죠. 제자 중 단 한 명도 창업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진취적이어야 하는데, 졸업생 중 3분의 1은 창업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초대해 학생들과 연결시켜 줬더니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군요. 자랑 같지만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의 김문수 사장,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투자자문의 최준철·김민국 대표가 모두 제 강의를 들은 뒤 취직해야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죠.”
▷경영학 수업이지만, 파격으로 보입니다.
“2009년 환갑이 돼선 기존 강의 주제를 모두 버렸습니다. 강의 내용은 딱 두 개로 정리했습니다. 첫째가 창조였고, 둘째가 나눔이었습니다. 두 과목을 맡아 창조적인 발상과 따뜻한 마음을 각각 강의했어요. 창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자기 인생을 3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또 책을 던져주고 그 속에서 스토리를 뽑아 조별로 연극을 하게 했죠. 음대 교수한테 작곡법을 3시간 배우도록 한 뒤 뮤지컬도 제작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대기업 인재육성 전략’ 같은 걸 과제로 냈죠. 신기한 점은 학생들이 예술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영학적 솔루션을 낸다는 거죠. 한 학생이 이러더군요. ‘저는 교수님 강의 듣기 전엔 5000만명 국민 중에 50만명의 예술가와 4950만명의 관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4950만명의 예술가와 예술을 가르쳐주는 50만명의 기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요.”
▷나눔 강의는 평가가 어땠나요.
“학생들에게 본인의 나눔 인생을 단편영화로 만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이 재즈밴드 얘기를 다룬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재즈밴드는 악보가 있긴 한데 절대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날그날의 상황과 멤버들의 컨디션에 따라 서로 연주 내용을 조절한다고 해요. 동료의 건강과 심리 상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일이 되는 거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창조라는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예술이라는 뿌리에서 창조와 나눔이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도 창조와 나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만 바뀐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7년 전에 찾아왔어요. 전자책으로 유명한 아이웰 출판사의 김성민 대표였는데 당시엔 졸업을 앞두고 있었죠. 문화 콘텐츠사업을 하겠다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제 강의 노트를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쓸 테니 공동 저자로 참여해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2008년에 ‘장미와 찔레’라는 자기계발 소설이 나왔습니다. 이 책으로 ‘서울문학인’의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하게 됐죠. 이후 김 대표와 함께 역사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와 ‘장미와 찔레 속편’도 내게 됐죠. 경영학이 전부였던 제 인생이 조금씩 바뀌게 됐습니다.”
▷예술과 경영의 조화는 다소 엉뚱해 보입니다. 쉽게 와 닿지도 않고요.
“예술은 조화를 추구하죠. 반면 경영의 목표는 효율성입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경영학이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방향이 조화입니다. 가령 구성원 간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조화 같은 거죠. 디자인 같은 예술 이론으로 경영 문제를 푸는 것도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해온 경영예술이고 디자인경영입니다.”
▷창조가 중요하다지만, 창조경제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명확해지면 더 이상 창조경제가 아닙니다. 조건 없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게 창조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창조의 올바른 방향이란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죠.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과 같은 말이 창조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얘기죠.”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정치권에서도 러브콜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제가 세운 원칙은 교수직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영학의 범위 내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왔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한 것도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가능했습니다.”
▷한국 정치는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정치는 국민의 구성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이 여성을 절대 대변할 수 없고, 50대와 60대가 결코 20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여성과 청년 정치인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국회든 정부든 모두 인구 구성비를 따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는 6월 서울대 총장 선거가 있는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대학과 교수의 역할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대학과 사회가 함께 변화하며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법인화된 이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리더가 있을 겁니다.”
■ 조동성 교수는
1949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를 거쳐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8년 당시 최연소인 29세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로 재직한 36년간 외국어 서적 7권을 비롯해 61권의 저서와 95편의 학술 논문을 냈다. 학계는 물론 경제계와 정·관계에 두루 발이 넓은 경영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2000년 옛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기업구조조정위원으로 일했고 2011년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을 맡고 있다. 본인이 맡은 조직의 재정을 탄탄히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 오랫동안 한국경영학회 회장과 국내 학회 연합단체인 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최근엔 경영학에 예술과 윤리학을 접목하며 학문 간 통섭을 추구해 왔다. 2008년 5월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작품인 ‘백조의 호수’에 마왕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같은 해 제자와 함께 내놓은 ‘장미와 찔레’라는 소설로 공식 등단하기도 했다. 고 최종현 SK 회장의 동생인 최종욱 전 SKM 회장이 매형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그는 늘 앞서 걸을 만큼 걸음걸이가 빠르고 경쾌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먼저 달려가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다른 이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리는 배려심을 보여줬다.
조 교수는 1978년 당시 최연소인 29세에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임용된 뒤 36년간 경영학만 가르쳤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효율성보다 예술과 창조, 나눔 등을 더 강조했다.
모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6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섰다는 조 교수. 내달 정년퇴임하는 그를 지난 17일 서울대 경영관에서 만났다.
▷방학인데 요즘도 연구실에 자주 나오나요.
“제 연구실이 612호인데 무슨 의미인 줄 아세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B612라는 소행성 알죠? 어린왕자에게 B612가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나에게 612호도 정말 보물 같은 곳입니다.”
▷36년간 교수를 했으면 때론 지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조효원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교수를 하다 중간에 그만뒀어요. 어머니는 그게 마뜩잖았던가 봐요. 어머니는 제가 교수가 됐을 때 ‘교수로 퇴임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 약속을 지키게 돼 다행입니다. 36년간 재미있게 보내려 노력했습니다. 전공이 경영전략과 경영혁신이라 자주 삶에 변화를 줬어요. 강의도 그랬죠. 2000년 뉴 밀레니엄을 맞아 이전 강의계획서를 모두 버렸습니다. 제 강의에서 기말고사를 다 없앴습니다. 대신 학생들에게 학기 말에 사업계획서나 창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죠.”
▷기말고사를 없앤 건 무엇 때문인가요.
“학생들 때문입니다. 공무원 되고 대기업 가려는 학생들만 넘쳐났죠. 제자 중 단 한 명도 창업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진취적이어야 하는데, 졸업생 중 3분의 1은 창업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초대해 학생들과 연결시켜 줬더니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군요. 자랑 같지만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의 김문수 사장, 가치투자로 유명한 VIP투자자문의 최준철·김민국 대표가 모두 제 강의를 들은 뒤 취직해야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창업전선에 뛰어들었죠.”
▷경영학 수업이지만, 파격으로 보입니다.
“2009년 환갑이 돼선 기존 강의 주제를 모두 버렸습니다. 강의 내용은 딱 두 개로 정리했습니다. 첫째가 창조였고, 둘째가 나눔이었습니다. 두 과목을 맡아 창조적인 발상과 따뜻한 마음을 각각 강의했어요. 창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자기 인생을 3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또 책을 던져주고 그 속에서 스토리를 뽑아 조별로 연극을 하게 했죠. 음대 교수한테 작곡법을 3시간 배우도록 한 뒤 뮤지컬도 제작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대기업 인재육성 전략’ 같은 걸 과제로 냈죠. 신기한 점은 학생들이 예술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영학적 솔루션을 낸다는 거죠. 한 학생이 이러더군요. ‘저는 교수님 강의 듣기 전엔 5000만명 국민 중에 50만명의 예술가와 4950만명의 관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4950만명의 예술가와 예술을 가르쳐주는 50만명의 기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요.”
▷나눔 강의는 평가가 어땠나요.
“학생들에게 본인의 나눔 인생을 단편영화로 만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이 재즈밴드 얘기를 다룬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재즈밴드는 악보가 있긴 한데 절대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날그날의 상황과 멤버들의 컨디션에 따라 서로 연주 내용을 조절한다고 해요. 동료의 건강과 심리 상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일이 되는 거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창조라는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예술이라는 뿌리에서 창조와 나눔이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도 창조와 나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만 바뀐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7년 전에 찾아왔어요. 전자책으로 유명한 아이웰 출판사의 김성민 대표였는데 당시엔 졸업을 앞두고 있었죠. 문화 콘텐츠사업을 하겠다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제 강의 노트를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쓸 테니 공동 저자로 참여해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2008년에 ‘장미와 찔레’라는 자기계발 소설이 나왔습니다. 이 책으로 ‘서울문학인’의 소설부문 신인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하게 됐죠. 이후 김 대표와 함께 역사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와 ‘장미와 찔레 속편’도 내게 됐죠. 경영학이 전부였던 제 인생이 조금씩 바뀌게 됐습니다.”
▷예술과 경영의 조화는 다소 엉뚱해 보입니다. 쉽게 와 닿지도 않고요.
“예술은 조화를 추구하죠. 반면 경영의 목표는 효율성입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경영학이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방향이 조화입니다. 가령 구성원 간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조화 같은 거죠. 디자인 같은 예술 이론으로 경영 문제를 푸는 것도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해온 경영예술이고 디자인경영입니다.”
▷창조가 중요하다지만, 창조경제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명확해지면 더 이상 창조경제가 아닙니다. 조건 없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게 창조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창조의 올바른 방향이란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죠.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과 같은 말이 창조의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얘기죠.”
▷대외 활동을 많이 해서 정치권에서도 러브콜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제가 세운 원칙은 교수직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영학의 범위 내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왔습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한 것도 겨울방학 기간이어서 가능했습니다.”
▷한국 정치는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정치는 국민의 구성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이 여성을 절대 대변할 수 없고, 50대와 60대가 결코 20대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없습니다. 여성과 청년 정치인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국회든 정부든 모두 인구 구성비를 따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는 6월 서울대 총장 선거가 있는데,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대학과 교수의 역할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대학과 사회가 함께 변화하며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법인화된 이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거기에 필요한 리더가 있을 겁니다.”
■ 조동성 교수는
1949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를 거쳐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8년 당시 최연소인 29세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로 재직한 36년간 외국어 서적 7권을 비롯해 61권의 저서와 95편의 학술 논문을 냈다. 학계는 물론 경제계와 정·관계에 두루 발이 넓은 경영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2000년 옛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기업구조조정위원으로 일했고 2011년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을 맡고 있다. 본인이 맡은 조직의 재정을 탄탄히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 오랫동안 한국경영학회 회장과 국내 학회 연합단체인 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냈다.
최근엔 경영학에 예술과 윤리학을 접목하며 학문 간 통섭을 추구해 왔다. 2008년 5월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작품인 ‘백조의 호수’에 마왕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같은 해 제자와 함께 내놓은 ‘장미와 찔레’라는 소설로 공식 등단하기도 했다. 고 최종현 SK 회장의 동생인 최종욱 전 SKM 회장이 매형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