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리 꿰뚫어야
인수 후 기업가치 제고로 PEF 투자방식 달라져…재계 출신 약진 늘어날듯
PEF '인재 화수분'은
증권사·은행 대거 배출…외국계 PEF 대표는 IB·컨설팅 출신 많아
PEF의 급팽창과 함께 감지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리더군(群)의 다양화’다. 하버드대, 예일대 졸업장 등 화려한 ‘스펙’을 전면에 내건 해외 투자은행(IB) 출신들이 씨앗을 뿌렸다면, 국내 증권사 및 벤처캐피털에서 잔뼈가 굵은 토종 재무 전문가들이 이들과 연계해 기틀을 다졌고, 기업인 출신이 운용전략의 고도화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진화한 PEF 생태계의 현주소다.
○기업 출신 PEF의 부상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10대 독립계 PEF 운용역 130명의 학력과 경력을 분석한 결과 PEF 리더 중에는 IB 출신이 63명(48.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회계 25명(19.2%) △재계 23명(17.7%) △컨설팅 10명(7.7%) △법조 5명(3.8%) 순이었다.
기업인 출신은 아직 소수다. 하지만 ‘소수’의 활약은 눈부시다. 진대제 사장이 이끄는 스카이레이크(운용 규모 9308억원)는 정보기술(IT)기업 전문 운용사로 뜨면서 지난해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군인공제회 지방행정공제회 등 주요 연기금이 ‘출자 콘테스트’를 진행할 때마다 투자를 받았다. 약 8조원을 운용하는 홍콩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박영택 부회장도 삼성전자에서 19년간 재직한 ‘삼성맨’이다.
큐캐피탈도 기업인 출신이 리더를 맡고 있다. 유종훈 창업자는 현대자동차 재무팀을 거쳤고, 부회장 2명은 현대종합상사와 두양금속에서 경력을 쌓았다. H&Q의 임유철 공동 대표도 PEF가 투자한 기업들에서 일하다 PEF 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사례다.
전문가들은 기업인의 약진이 한층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곽동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싼값에 매입해 비싸게 파는 단기 재무적 투자 형태에서 인수 후 경영 혁신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려 매각하는 방식으로 PEF의 투자 기법이 변화하고 있다”며 “기업 생리를 꿰뚫고 있는 재계 출신이 PEF 시장에서 활약할 무대는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틱은 이 같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OPG(경영자파트너그룹)’라는 별도 조직을 신설했다. 박계현 전 LG엔시스 사장, 백봉부 전 삼성전자 전무 등 3~4명의 퇴직 기업인이 포함돼 있다.
○외국계는 해외 IB, 컨설팅 출신 맹활약
지난 10년간 PEF 시장의 최대 계파를 형성한 재무 전문가그룹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해외 IB, PEF, 컨설팅 회사 출신들이다. 하버드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한 뒤 골드만삭스 등을 거쳐 칼라일그룹 부회장으로 일하다 독립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고펀드 공동 대표 4명 가운데 관(官) 출신인 변양호 대표를 제외한 3명(이재우 신재하 박병무)도 각각 리먼브러더스, 모건스탠리, TPG캐피털 한국대표를 지냈다.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모건스탠리PE), 김종훈 EQ파트너스 대표(맥쿼리캐피털)도 이 범주에 속한다. 송인준 IMM PE 대표는 “PEF 출범 초기엔 해외에서 PEF 업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부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외국계 PEF 대표들의 ‘출신 성분’도 비슷하다. 이상현 칼라일 한국대표와 김태엽 스탠다드차타드PE 대표는 각각 맥킨지앤드컴퍼니와 보스턴컨설팅그룹 출신이다. 허석준 CVC 대표, 이상훈 모건스탠리PE 대표는 해외 IB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국내 증권사 및 은행, 벤처캐피털도 PEF 업계 인물들을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는 또다른 ‘화수분’이다. 신한금융그룹 투자운용실장 출신인 도용환 회장이 창업한 스틱인베스트먼트는 ‘토종’ 재무 전문가들이 이끄는 대표적인 사모펀드다. 곽동걸, 최병원 공동 대표 모두 증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IMM PE의 송인준, 장동우 대표도 각각 한국종합금융과 페레그린증권 출신이다. 김한수 전 대우증권 IB본부장은 명품 핸드백 제조업체인 시몬느가 출자한 시몬느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일하고 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