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안중근 의사 기념관' 하얼빈역에 깜짝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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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朴 대통령 방중 때'표지석'요청…시진핑, 통 큰 화답
이토 히로부미 저격현장 200여㎡ 비밀리에 공사…한국과 협력 日 압박 포석
이토 히로부미 저격현장 200여㎡ 비밀리에 공사…한국과 협력 日 압박 포석
19일 오후 1시55분(현지시간) 중국 하얼빈역. 새하얀 건물을 감싼 붉은 장막을 걷어내자 중국어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라고 쓰인 현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년 만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다.
이날 중국 하얼빈시와 철도국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완공하고 개관식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쑨야오 헤이룽장성 부성장, 쑹시빈 하얼빈시 시장을 비롯한 중국 측 인사들만 참석했다. 우리나라 관계자가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번 행사가 한·중 양국 간 역사 공조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중국 측은 기념관 공사를 비밀리에 진행했다. 일본의 반발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은 안 의사 의거 직후 이곳에 이토 히로부미 추모비를 세웠다. 일제 패망 후 추모비가 철거된 뒤 안 의사의 추모비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일본은 안 의사를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우리 정부는 한국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고 우호관계가 형성된 2006년에서야 하얼빈역 바닥에 ‘안중근 의사 의거’ 표시를 새길 수 있었다. 안 의사의 표지석 설치를 추진하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해 11월 안 의사가 범죄자라며 방해 공작을 펼쳤다.
기념관 완공에는 중국의 협조가 컸다. 하얼빈시와 철도국은 기념관 건립에 공통 투자했다. 관리는 하얼빈시에서 담당한다. 기념관은 의거 현장 앞 귀빈실 일부를 개조해 200여㎡ 크기로 지어졌다. 방문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저격 현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는 안 의사의 일생과 사상을 담은 사진, 사료 등이 전시됐다. 저격 현장 천장에도 설명 문구를 넣고 일부 전시물에는 한국어 설명을 곁들였다.
이 기념관은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를 놓고 한·중·일 3국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건립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 설치를 요청했고, 시 주석은 표지석뿐만 아니라 기념관 건립으로 화답했다.
중국이 기념관을 지은 것은 역사 인식 문제라는 공통분모를 고리로 한국과 함께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분석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 잠입,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던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듬해 2월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26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지 104년 만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다.
이날 중국 하얼빈시와 철도국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완공하고 개관식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쑨야오 헤이룽장성 부성장, 쑹시빈 하얼빈시 시장을 비롯한 중국 측 인사들만 참석했다. 우리나라 관계자가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번 행사가 한·중 양국 간 역사 공조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중국 측은 기념관 공사를 비밀리에 진행했다. 일본의 반발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은 안 의사 의거 직후 이곳에 이토 히로부미 추모비를 세웠다. 일제 패망 후 추모비가 철거된 뒤 안 의사의 추모비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일본은 안 의사를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우리 정부는 한국의 중국 투자가 늘어나고 우호관계가 형성된 2006년에서야 하얼빈역 바닥에 ‘안중근 의사 의거’ 표시를 새길 수 있었다. 안 의사의 표지석 설치를 추진하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해 11월 안 의사가 범죄자라며 방해 공작을 펼쳤다.
기념관 완공에는 중국의 협조가 컸다. 하얼빈시와 철도국은 기념관 건립에 공통 투자했다. 관리는 하얼빈시에서 담당한다. 기념관은 의거 현장 앞 귀빈실 일부를 개조해 200여㎡ 크기로 지어졌다. 방문자들이 유리창 너머로 저격 현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는 안 의사의 일생과 사상을 담은 사진, 사료 등이 전시됐다. 저격 현장 천장에도 설명 문구를 넣고 일부 전시물에는 한국어 설명을 곁들였다.
이 기념관은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를 놓고 한·중·일 3국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건립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 설치를 요청했고, 시 주석은 표지석뿐만 아니라 기념관 건립으로 화답했다.
중국이 기념관을 지은 것은 역사 인식 문제라는 공통분모를 고리로 한국과 함께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분석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 잠입,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던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듬해 2월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26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