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과 25년 동고동락…말러열풍 귓전에 맴돌아"
임헌정(사진)이란 이름과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동의어’다. 1988년 정단원 5명으로 시작한 이 관현악단은 이듬해 36세의 젊은 지휘자 임헌정을 상임지휘자로 앉혔다. 임씨와 부천필은 이후 25년간 손발을 맞춰 왔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오래도록 함께한 것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임씨와 부천필이 작별의 시간을 맞게 됐다. 임씨는 당초 올해 말까지 오케스트라를 이끌 예정이었으나 지난 17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에 임명되면서 이별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그는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 임기에 맞춰 부천필의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부천 중동 부천시민회관에서 만난 임씨는 “긴 시간 동고동락했던 부천필을 갑자기 떠나게 돼 단원들과 사무국에 미안하다”며 “한두 가지 중요한 연주는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직접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지방 오케스트라에 불과했던 부천필하모닉을 국내 대표적 오케스트라로 키웠다. 1999년부터 4년간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도 생소했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해내며 국내에 ‘말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베토벤 교향곡(2003년), 슈만과 브람스 교향곡(2010년), 브루크너 교향곡(2007~2013년) 등 한 작곡가를 깊이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임씨는 이런 작업에 대해 “단원들에게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동기부여가 된다”며 “한 번 작업을 끝낼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실력 향상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는 말러 연주회를 꼽았다. “국내 클래식계 은둔 고수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부천필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부천시와 시의회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임씨는 “부천필하모닉에 ‘열심히 연주해야 한다’는 전통은 세우고 가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불량식품 만드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처럼 ‘불량연주’를 하는 사람도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란 것도 결국 사람들의 정신적 양식이잖아요.”

임씨가 예술감독을 맡게 된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예술의전당 상주 오케스트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단원들과 ‘좋은 음악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부천필하모닉은 오는 24일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임헌정 취임 25주년 기념 신년음악회를 연다. 임씨가 부천필 상임지휘자로서 마지막으로 오르는 무대다. 오후 7시30분, 전석 1만원. (032)625-8330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