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사건 피해자 11명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영화 변호인 상영 후 봉하마을 방문객 많이 늘어


"노무현 변호사님 고맙습니다.그리고 미안합니다.영화를 보면서 우리를 변호하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 인간적 고뇌가 깊으셨는지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인 부림사건 피해자 고호석(56·부산 거성중학교 교사) 씨는 21일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림사건의 다른 피해자 10명과 함께 이날 봉하마을에 온 고씨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실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이제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안히 잠드십시오"라고 명복을 빌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함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는 처음이다.

1981년 부산 대동고등학교 교사였던 고씨는 부산대 영문학과 재학 시절 독서모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 해 8월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수건으로 눈이 가려진 채 경찰에게 붙잡혀갔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6가지였다.

이후 어둡고 두려운 경찰 대공분실에서 36일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숱하게 얻어맞았다.

그때 '통닭구이' 고문도 많이 당해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닭구이는 두 손과 양 발을 긴 막대 같은 것에 묶어 거꾸로 매달아 놓고선 마구 폭행하는 고문이었다.

고씨는 "당시 온몸이 망가져 시체나 마찬가지였다"며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처절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고문 사실은 온 국민이 다 아는데도 정작 부림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들은 최근 보수 언론매체에 나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등 진실을 호도, 노 변호사를 모독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고씨는 "사건 담당 검사들은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법학과를 졸업한 주정민(56) 씨는 같은 이유로 1981년 9월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잡혀갔다.

주씨는 경찰에서 곡괭이 자루 같은 것으로 너무 많이 맞아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1심에서 3년6월, 2심에서 2년6월을 각각 선고받고 2년을 옥살이하고서 1983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주씨는 고향에서 협동조합과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최준영(61·동북통상 대표) 씨도 같은 1981년 9월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에서 체포 영장도 없이 경찰에 불법 연행됐다.

최씨는 양서협동조합에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그는 "노무현 변호사의 열정적이고 논리적인 변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함께 참배하고 나서 당시 노 변호사의 부인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권양숙 여사도 예방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권 여사는 부림사건은 노 전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한 인생의 큰 전환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고 이들은 전했다.

권 여사는 한밤중에 괴전화가 자주 걸려와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해 사건을 맡은 남편을 한때 원망하기도 했다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했다.

권 여사는 또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노 전 대통령도 지하에서 오히려 고마워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고 이들은 말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그 가운데 19명이 기소돼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에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변호인'은 개봉 33일 만인 지난 19일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 변호인 상영 후 토요일에 3천여 명, 일요일에 5천여 명이 봉하마을을 각각 찾아 지난해 이맘때 토요일(1천500~2천명)과 일요일(3천명)보다 방문객이 많이 늘었다고 노 전 대통령 사저 경비 담당 경찰은 전했다.

(김해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ym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