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 평가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하위 법관(워스트 법관)’ 명단 공개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울변회가 23일 하위 법관 명단 공개를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변회는 2008년부터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맡은 사건의 재판장에 대한 점수를 매기도록 해 높은 순위를 차지한 법관의 실명만 외부에 공개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평가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지 않자 올해부터 낮은 순위를 차지한 하위 법관의 실명도 공개키로 지난해 12월 결정했다.

이를 위해 서울변회는 21일 오전 10시 대법원 기획조정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법원의 공식 입장을 청취하려 했으나 대법원 측이 이에 불응, 실무 협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승철 서울변회 회장은 이날 오후 기자와 만나 “대법원 측에서 ‘법관 인사 반영 여부까지 논의한다면 양측 입장이 갈려 어차피 결론을 도출할 수 없으므로 기조실장 참석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하더라”며 “특정 법관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려는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소위 ‘문제 법관’들의 행태가 시정돼 사법 서비스가 개선되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나 회장은 “대법원에서 하위 법관으로 잇따라 선정된 법관의 경우 재판과 무관한 보직을 맡기는 등 인사에 반영한다면 명단 공개 방침을 철회할 수도 있다”며 “명단 공개 여부가 미정이라 아직 하위 법관으로 몇 명을 선정할지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명단 공개 여부 및 하위 법관 규모도 결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 기조실장 참석을 요구해 거절했을 뿐”이라면서도 “현재 양측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내일까지는 대법원의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하위 법관 명단을 인사에 반영하라는 요구는 재판 없이 사형 선고를 내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하위 법관으로 선정된 법관에게 누가 재판을 받으려고 하겠느냐. 당사자 측에서 해당 법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할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