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구두상품권의 불편한 여행
민족의 명절, 설날이 코앞이다. 명절선물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상품권이다. 백화점 상품권, 주유 상품권, 구두 상품권, 전통시장 온누리 상품권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시장 규모도 엄청나다. 그중 구두 상품권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소개할까 한다. 국내 제화기업 대부분은 자체 공장이 없다. 본사는 디자인, 생산관리, 물류관리 등만 하고 제조는 소규모 제화공방들이 하청을 받아 생산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국내 유수의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그만 창고 제화공방에서 수십년 경력의 구두장인과 제화공이 도제 방식으로 한 켤레 한 켤레 수제구두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든 구두 한 켤레를 납품하면 얼마가 남을까? 지난 여름 만난 제화공방 사장님 얘기에 따르면 한 족당 2000~3000원이라고 한다. 백화점에서 30만원대에 팔리는 구두 한 켤레를 만들어주고 2000원, 3000원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거기에 재고 부담을 끌어안고, 박스 포장, 태그까지 붙여주다 보면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워 사실상 구두에 돈 끼워서 납품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유통구조를 지목했다. 구두 판매가는 보통 납품가의 6~7배이다. 판매가의 32~33%는 백화점 수수료로, 13~15%는 개인 사업자인 백화점 매장 수수료로 넘어간다. 그러다보니 원청 제화기업도 10% 부가세와 물류비 등을 감당하면 남는 게 없다. 거대 유통이 먹고 남은 콩고물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구두 상품권’이 등장한다. 하청 공방으로부터 납품받은 제화기업이 납품대금으로 돈이 아닌 ‘상품권’을 내민다. 구두 장인에게 자기가 만든 구두를 살 수 있는 상품권을 주면 그것으로 구두를 사겠는가? 아니다. 상품권은 다시 부속품 납품업자에게 지급된다. 부속품 납품업자는 다시 또 누군가에게 대금으로 상품권을 넘긴다. 상품권은 넘어갈 때마다 값이 떨어진다. 돌고 돌아 값이 바닥을 칠 때 즈음이면 맨 처음 상품권을 발행한 곳에서 회수해간다. 가장 취약한 사람의 마지막 한방울을 거두는 수단으로 상품권이 제화거리를 떠도는 것이다. ‘상품권의 잔인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명절날 감사의 선물로 전하는 ‘구두 상품권’에 이처럼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다. 지금 제화공방 거리가 정상이 아니다. 제화거리를 누르고 있는 비정상적 유통의 정상화, 비정상적 하청의 정상화에 주목해주길 당부한다.

김현미 < 민주당 국회의원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