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톱 골퍼도 "후원사 구합니다"
프로골퍼 스토브리그가 썰렁하다. 지난해만 해도 여기저기서 ‘억, 억!’ 하면서 선수 후원 계약이 봇물 터지듯 했으나 올해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특히 신지애(26), 안신애(24), 양수진(23) 등 특급 스타들이 시장에 나왔지만 한 달이 넘도록 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현상 유지 재계약에 그쳐

불경기에…톱 골퍼도 "후원사 구합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후원 계약은 대부분 재계약 일색이다. 김세영(21·미래에셋), 최경주(44·SK텔레콤), 김혜윤(25·KT), 허윤경(24·SBI저축은행), 최유림(24·고려신용정보), 이일희(26·볼빅) 등은 돈을 더 주는 새 후원사를 찾는 대신 기존 후원사와 일찌감치 계약을 연장했다.

새 후원사를 찾고 있는 선수들은 1년 만에 달라진 시장 상황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신지애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매니지먼트사의 이성환 사장은 “그동안 미래에셋으로부터 연 계약금 10억원에다 인센티브 5억원 등 매년 15억원을 받았으나 이보다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추진 중”이라며 “제안서를 서너 군데 넣었으나 아직 제대로 협상조차 못 해봤다”고 털어놨다. 최악의 경우 메인스폰서 없이 시즌을 맞을 수도 있다.

‘미녀골퍼’ 안신애도 의류 및 용품 후원사로 테일러메이드-아디다스골프와 계약을 맺었으나 정작 메인 스폰서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 매니지먼트사인 IB월드와이드 관계자는 “현재 세 곳과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금액은 어느 정도 접근했으나 논의할 부분이 더 남아 있다”고 녹록지 않은 상황을 전했다.

양수진은 지난해 정관장과 2년 계약을 맺었으나 올해부터 일본에서 뛴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계약 연장이 무산됐다. 양수진의 에이전트인 이한나 씨는 “지난해에는 계약 문의를 하는 곳이 많았으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며 “일본 진출을 2년 뒤로 미루고 국내 기업을 후원사로 찾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거품 빠지면서 기업들 실리 따져

후원 시장이 얼어붙은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불경기와 그에 따른 기업들의 실적 부진에서 비롯됐다. 기업들마다 마케팅 비용을 대폭 삭감하면서 선수 영입의 여력이 부족해진 것. 이성환 사장은 “지난해만 해도 실력이 안 되더라도 옷을 잘 입는다거나 얼굴이 예쁘다거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등의 골프 외적인 요소를 감안해 너도나도 계약하는 분위기였으나 요즘은 꼭 필요한 선수가 아니면 계약을 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엔 ‘묻지마 계약’을 했으나 이것저것 따져서 계약하는 게 최근 현실이다.

아울러 기업들의 요구도 많아졌다.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을 때 모자 정면과 가슴 정도에 기업 로고를 새기고 모자 왼쪽은 서브 스폰서용으로 남겨뒀지만 이곳마저 메인 스폰서 로고를 넣도록 요구하는 등 투자 대비 최대의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지난해 이보미(26), 양수진, 송보배(28) 등 인기 선수를 거느렸던 정관장은 모두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강주원 정관장 단장은 “경영도 어렵고 선수 몸값이 너무 부풀려져 올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좋은 선수가 나오면 계약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박 터뜨린 선수도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린 선수들도 있다. 지난해 말 정관장과 2년 계약이 종료된 이보미는 연초에 코카콜라 재팬과 메인 스폰서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보미는 연간 계약금과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로 10억원을 훌쩍 넘는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정관장으로부터 받은 4억원의 세 배다. 일본 LPGA투어 최고 대우이며 현재 국내 여자프로골퍼 중에서도 최고 금액이다. ‘골프 여제’ 박인비(26)는 지난해 KB금융그룹으로부터 계약금과 인센티브를 다 합쳐 10억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받았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