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2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 원장, 류 장관,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22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 원장, 류 장관,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2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남북간 ‘질서 있는 교류’를 강조했다. 주고받기식의 ‘관성’으로는 신뢰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 발전이 어렵다는 게 요지다. 류 장관은 “남북 교류협력이 이뤄진다고 해도 과거처럼 북한이 무엇을 얻기 위해 우리를 대하는 상황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중단한 5·24 조치의 완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류 장관은 “과거 남북관계가 활발했을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북한의 태도에는 변한 게 없다”며 “우리 정부가 원칙과 기준을 갖고 북한을 대했는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 다 해줄 것처럼 얘기하고 사업이 이뤄지면 남북관계의 신뢰를 깎아내릴 수 있다”며 “질서 있는 교류·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 장관은 김정은 정권 이후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한 대비와 대응 방안 등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 원장=우리 정부가 북한의 평화 공세에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북한이 상호 비방 중지 제안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연계한 것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그러나 남남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계도가 필요하다.

▷류 장관=북한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good guy)이고 한국은 방해자처럼 말하는데 과거 북한이 보여준 상투적인 행태와 비슷하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말한 이산가족 상봉과 축산업 협력, 인도적 지원 강화 등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한 것이다. 반면 북은 할 수 없는 허황한 얘기를 하고 있다. 선전, 레토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통일 대박’이 이뤄지려면 로드맵이 필요하다. 지난 정부의 통일정책인 ‘통일항아리’는 유야무야됐다. 정부의 대북 기조와 현안 과제와 관련한 로드맵은 무엇이며 개성공단의 발전적 방향은 무엇인가.

▷류 장관=지금 남북관계는 누워 있는 자전거와 같다. 처음부터 페달을 밟는다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동력도 필요하지만 우선 자전거를 바로 서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 방향(로드맵)을 설정해도 늦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은 3통(통행, 통관, 통신) 문제 중 통행과 통관이 진전됐고 전자출입체계(RFID) 공사가 끝났다. 빠르면 이달 말부터 상시 통행과 통관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중대한 진전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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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원장=북한 정부를 조건 없이 도와주면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평화통일이 된다는 궤변이 팽배하다.

▷류 장관=남북관계가 쉬운 여정이 아니라는 점을 절감했다. 개성공단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남북 충돌 때도 유지됐던 개성공단이 북한을 자극하는 일도 없었음에도 중단됐다. 웬만큼 노력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막막한 심정도 들었다. 남북관계는 단번에 도약하는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1~2년 사이에 획기적 이벤트나 우리의 양보로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는 것은 신화다. 우리 사회가 그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이고 현명한 남북관계 방도를 찾을 수 있는 길이다. 그런 방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북한처럼 가치와 문화, 사회가 이질적인 상대와 신뢰를 형성하는 것은 어렵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개념이 뭔가.

▷류 장관=단순하게 신뢰는 약속한 건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 하더라도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 남북관계에서 그동안 인도적 지원 폭, 남북경협 규모와 교류 분야 등 ‘무엇’에 방점을 두고 사고해왔다. 앞으로는 ‘어떻게’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종현 부즈앤컴퍼니코리아 사장=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통적인 불만이 소통의 부재인데, 정부의 정책이 그 원인이다. 특히 창조경제의 모호한 개념과 통일 문제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유발하고 있어 기업인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 장관=민간 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을 정부가 다 통제할 수는 없다. 남북경협 사업을 하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 이익만 얻겠다는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20여년간 남북경협을 해왔지만 돈을 번 사람을 못 봤다. 남북관계가 갖고 있는 잘못된 성격 때문이었다고 본다. 자기 사업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뒤에 와서 잘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다른 경쟁자를 음해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영선 연세대 명예교수=독일은 정치권의 분열 없이 통일정책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정부가 통일을 임기 내 성사할 것이란 생각보다는 통일에 대한 방향과 일관된 원칙, 질서를 구상해내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류 장관=일관되고 지속적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통일의 기반을 위해 무엇을 할지 찾고 다음 정부까지 이어나가는 방법을 모색하겠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정부가 방북 허가를 늘려줄 계획은 없는지.

▷류 장관=상황을 보면서 신청하면 알려드리겠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김정은 정권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화 상대로 충분히 안정됐다고 보는가.

▷류 장관=지금 대화를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게 되면 답하겠다. 김정은 정권은 안정성이나 불안정성 등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정부 당국자가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리=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