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금융권력' 사모펀드] 토종 PEF, 5개 보험사에만 5조 쏟아부어…되팔지 못하면 '재앙'
‘KDB생명(8500억원) 동양생명(9000억원) 교보생명(1조6700억원) MG손해보험(2000억원) ING생명(1조8000억원).’

국내외 사모펀드(PEF)들이 지난 3년간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지분 일부에 투자한 국내 보험사 목록이다. 총 투자금액은 5조4200억원. 2013년 말까지 3년 동안 새로 늘어난 국내 펀드 약정금액(17조6000억원)의 30%가 보험업종에 흘러 들어갔다. 그런데도 국내 PEF들은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와 있는 업계 ‘빅4’ LIG손해보험 경영권에 또 ‘군침’을 흘리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대주주) 인가는 받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팔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국내에서 대형 보험사를 살 수 있는 수요자는 많지 않은데 앞으로 비슷한 시기에 매물을 팔려고 내놓으면 제값 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6년째 보유하는 매물 수두룩

PEF가 너도나도 보험사에 몰려드는 것은 한국형 PEF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형 연기금이 저금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투자(PEF 시장)에 돈을 풀고 있지만 운용사(GP)들은 괜찮은 투자 대상을 찾는 데 애를 먹기 일쑤다. 한정된 매물을 놓고 여러 PEF가 경쟁하다 보니 값도 올라간다. 비싸게 사니 제 값을 받고 팔기가 어렵다. 국내 한 대형 PEF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 투자받은 돈을 갖고 서로 매물을 사기 위해 경쟁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펀딩(투자금 유치)과 투자는 일정한 단계까지 올라왔으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아직 국내에서는 펀딩→투자→엑시트→펀딩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펀드를 설정한 뒤 통상 8~10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해 돌려줘야 한다. 회사 경영권을 파는 데 최소 6개월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늦어도 5년 후에는 재매각을 추진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국내 펀드 사정은 그다지 여유롭지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15개 대형 PEF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년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7곳이나 됐다. 동양생명(보고펀드), HK저축은행(MBK), 아이리버(보고펀드), 레이크사이드CC(우리투자증권), 메가박스(맥쿼리), LG실트론(보고펀드-KTB PE), C&M(MBK-맥쿼리) 등이다. 그런데도 매각을 미루는 것은 나중에 팔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도 한몫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손절매 유인 없어…너도나도 매각 미뤄

익명을 요구한 연기금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운용사(GP)뿐 아니라 자금을 댄 펀드투자자(LP)들도 자신이 담당할 때 손해보고 파는 걸 꺼린다”며 “PEF들이 손절매해야 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HK저축은행, 레이크사이드CC, 메가박스, LG실트론, C&M 등은 경영권 매각 또는 기업공개(IPO) 방식으로 최소 한 차례 이상 매각을 추진했으나 매수자와 가격 차이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투자 당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거나, 투자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떨어진 게 원인이다. C&M, 메가박스, 테크팩솔루션은 경영권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KDB산업은행이 정책적 목적으로 인수한 대우건설, KDB생명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건설 주당 평균 인수가는 1만5000원인데 23일 주가는 6170원으로 ‘반토막’에도 못 미친다. 투입한 원금은 3조원이 넘는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안전 투자를 선호하는 패턴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해외 PEF는 바이아웃(28.2%), 부동산(19.1%), 구조조정(9.8%), 세컨더리(6.6%), 벤처(6.5%) 등으로 펀드 전략과 투자 패턴이 다양하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