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상임금 범위 헷갈리네” >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노동연구원은 23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임금체계 개편 대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주제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 “통상임금 범위 헷갈리네” >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한국노동연구원은 23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임금체계 개편 대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주제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고용노동부는 23일 내놓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지난달 18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기업현장에 적용하는 다양한 기준을 담았다. ‘통상임금 확대로 과거 임금이 늘었더라도 새로운 노사합의 전까지 소급청구를 제한한다’ ‘정기상여금을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면 통상임금이 아니다’ ‘작년 성과를 기반으로 올해 지급하는 성과연봉은 통상임금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고용부는 이날 방하남 장관 주재로 ‘전국 근로개선 지도과장 회의’를 열고 이 지침을 전국 지방노동청에 보내고 향후 노사지도에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재직요건 붙으면 통상임금 아니다”

고용부는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재직’이라는 조건이 추가되므로 ‘근로의 대가성’과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복리후생비에 대해서만 ‘재직’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고용부는 이 법리가 정기상여금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부산고법 민사1부도 대우여객자동차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급일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난 8일 판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복리후생비에 지급일 재직 조건이 붙으면 ‘소정근로의 대가성’과 ‘고정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법 판결은 이 법리를 정기상여금에 적용한 첫 번째 하급심이다.

고용부는 다만 퇴직 전 근무일만큼 정기상여금을 날짜 수로 계산해 퇴직 후에 지급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예컨대 짝수 월마다 정기상여금을 받던 근로자가 1월 말 퇴직한 경우 2월에 정기상여금을 주지 않는 회사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1월까지 일한 부분에 대한 정기상여금을 주는 회사에선 통상임금이다.


○“성과 연봉은 통상임금”

근무실적을 평가해 지급하는 일반적인 성과급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다만 근무실적 최하등급을 받더라도 지급받는 최소한의 임금은 통상임금이다. A·B·C등급 가운데 최하위인 C를 받아도 100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면 100만원은 통상임금이라는 것이다.

고용부는 더 나아가 근로자의 작년 업무 실적에 따라 올해 지급 여부나 지급액을 확정하는 임금(성과연봉)은 고정성이 있기 때문에 통상임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년에 지급할 것을 지급 시기만 올해로 늦춘 것이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성과연봉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두고 소송이 진행 중인 대표적 기업은 한국GM이다. 한국GM은 매년 초 전년도 인사 평가 등급에 따른 비율로 인상한 ‘업적연봉’을 결정한 다음 이 업적연봉을 12개월에 나눠 지급한다. 지난해 7월 서울고법은 이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법조계에선 성과연봉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사측을 대리했던 홍준호 김앤장 변호사는 “전년 성과에 따라 추가 임금을 줄 때 일시불로 지급하면 성과급이고 12개월로 나눠서 주면 통상임금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추가수당 청구는 신의칙 위배

대법원은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 수준을 정한 경우,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추가되는 수당을 청구하는 것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추가 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고용부는 신의칙이 적용되는 노사합의는 명시적·묵시적 합의 또는 근로관행도 포함된다고 봤다.

임무송 고용부 근로개선정책국장은 “취업규칙을 제정하거나 변경할 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에 대해 근로자들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취업규칙도 신의칙이 적용되는 근로관행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소모적인 소송 자제를”

노동부는 신의칙을 적용하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은 기업의 개별적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될 경우 기업이 부담하게 될 추가 수당 규모, 전년 대비 실질임금 상승률과 과거 평균 상승률 비교, 기업의 재정 및 경영상태 등이 기준이다.

방 장관은 “노사가 소모적인 소송보다는 기존 합의 기간이 끝나기 전에 성실하게 협의해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통상임금

통상임금=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산정 시 기초가 되는 것으로 통상적으로 사업장에서 일하고 받는 임금. 대법원은 근로의 대가이면서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통상임금이 많아지면 1차적으로 각종 수당이 증가하고 2차적으로 퇴직금 등이 늘어난다.

■ 신의성실의 원칙

법률 관계 당사자는 상대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모든 법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 규범이다. 민법(2조)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1항)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2항)고 규정하고 있다

강현우/정태웅/양병훈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