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3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장에 국회의원들이 입장했다. 사상 초유의 카드사 개인정보 무더기 유출 사태와 관련해 당국자로부터 긴급 현안보고를 받기 위해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소집된 것이다. 지난 19일 금융당국이 고객정보 유출 사태를 처음 발표한 지 5일이 지나서다.

김정훈 정무위원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금융관리 감독상 문제가 있다면 금융당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며 개회를 알렸다. 이때 24명의 정무위원 중 절반을 겨우 넘는 14명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불참자 중에는 상임위 양당 간사의 빈자리도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 체류 중인 김영주 야당 간사는 원내지도부의 조기 귀국 촉구에도 불구하고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관한 한·르완다 간 첫 의원외교에 나선 것이라 공식 일정을 취소할 수 없었다는 해명이다. 최근 부산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민식 여당 간사도 지역 일정을 소화하느라 회의에 지각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카드런’ 사태를 논의할 담당 상임위가 늦게 열리게 된 이유도 분분했다. 정무위 관계자에 따르면 현안보고를 위한 회의를 열자고 각 소속의원들에게 통보된 건 지난 21일 오후. 이틀 만에 이미 잡혀 있는 해외·지역 공식 일정을 조정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는 것. 또 다른 관계자는 “책임 소재를 묻기 위해선 원인 규명이 우선인데 금융당국도 정확한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현안보고가 이뤄질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무위 내에서도 하루빨리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와 국회의 자체적인 사태 파악이 우선이므로 소집을 빨리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반반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변명이 통하려면 이날 상임위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뭔가 진전된 논의가 이뤄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현안보고와 카드사 사장에 대한 호통으로 시간을 때운 상임위의 ‘구태’를 재연했을 뿐이다.

신용카드를 바꾸겠다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불안에 떠는 국민들을 떠올리면 씁쓸하기만 하다.

추가영 정치부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