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론주의' 고질병…反시장·복지 포퓰리즘에 망가진 아르헨티나
외화 환전시 사전 신고 의무화, 해외 인터넷 쇼핑 금지, 자국 생산 품목 수입 금지, 민간 기업 통계 발표 금지….

주요 20개국(G20)에 속한 아르헨티나에서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규제들이다. 반시장경제와 복지 강화를 내세운 아르헨티나식 ‘페론주의’의 결과다. 미국보다 셰일가스 매장량이 더 많고 콩 소고기 등 각종 자원이 풍부한 ‘축복의 땅’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란 전망의 배경에는 페론주의가 낳은 경제 실패가 자리하고 있다.

◆통화 방어 포기…시장 ‘충격’

아르헨티나는 2011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통화 가치 방어에 ‘올인’해 왔다.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수입하는 아르헨티나에서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올려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발표한 물가상승률은 연 10%대지만 실제는 연 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저축을 위한 외화 환전 금지 △달러 환전 시 사전 신고제 △해외여행 사전 신고제 △해외 인터넷 쇼핑몰 이용 금지 등 극단적인 통화 방어 정책을 써 왔다.

호르헤 카피타니츠 아르헨티나 내각장관은 23일(현지시간) “오늘은 달러를 사거나 팔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사실상 통화 가치 방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이날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294억달러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이날에만 14% 급락해 달러당 7.9페소를 기록했다. 다음날인 24일 카피타니츠 장관은 “일반인의 달러화 매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며 “환율 정책을 바꿀 만한 적정 시점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주부터 저축 목적의 달러화 매입을 허용하고 달러 매입시 부과되는 세율을 기존 35%에서 20%로 낮출 방침이다.

◆위기 반복에도 여전한 페론주의

1920년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경제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 이후 경제의 중심인 유럽 자금이 빠지고, 이후 수입 통제 등 폐쇄적 경제정책을 고집하며 경제가 기울기 시작했다. 1946년부터 집권했던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은 배우 출신인 아내 에바 페론의 인기를 등에 업고 노동자 임금 대폭 인상, 산업 국유화 등 강력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시행했다. 과도한 복지에 따른 재정적자가 심해지자 1970년대부터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결국 2001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환위기를 비롯한 수차례 경기 침체에도 아르헨티나는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완제품뿐 아니라 모든 부품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내각 일부가 지나친 포퓰리즘에 반발하자 이들을 전부 해임했다.

하지만 최근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며 60년 넘게 유지된 페론주의가 곧 종말을 맞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지영 한국은행 신흥경제팀장은 “아르헨티나 자체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다”며 “다만 국제금융시장과는 접점이 크지 않고 리스크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어 막상 디폴트가 나도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