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지자체 파산제도 도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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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4일 “지방 재정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를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자체 파산제란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위기에 처한 지방정부의 빚을 중앙정부가 청산하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부채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은 지자체에 파산 선고를 하고, 예산 편성 권한이나 자치권을 박탈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 채무(지방채)는 27조1252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18조2076억원)에 비해 49.0% 증가했다. 숨겨진 빚으로 불리는 지방공기업 부채(2012년 기준 72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100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선거를 의식한 일부 지자체장이 전시·선심성 사업을 남발하고 지방공기업을 무분별하게 설립하면서 지방 재정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지방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파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자체 파산제를 도입하려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재정부문 의사 결정을 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 수준인 재정 구조에선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칫 지방자치의 취지를 훼손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지자체 파산제 도입과 관련,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와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가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찬성 '지방 살림' 방만한 운용…제도적 퇴출 장치 필요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 선거로 뽑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 재정이 분권화돼야 한다. 헌법 117조 제1항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고 있다. 이런 내용 중 하나가 자치재정권이다. 따라서 지방 정부의 파산을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주민이 가져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헌법과 각종 법률에서 한국보다 더 강하게 지방정부의 재정분권과 자치재정권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지자체 파산과 회생 절차를 담은 ‘연방파산법 9장’을 1934년 제정했다. 이 법의 기본 정신은 자치단체의 회생에 있다. 일본도 그 취지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개인파산제도의 핵심은 파산에 처한 개인을 회생시키는 것이지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파산제도 도입도 건전 재정 유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 자치단체의 재정위험성은 강도와 지속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재정압박→재정고통→재정파산으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에서는 지방정부가 재정압박, 재정위기의 단계를 넘어 재정파산에 이르게 됐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재정파산제도 도입이 필요한 논거는 다음의 두 가지에 있다고 본다.
재정자립도 평균 50% 넘어…지방정부, 재정위기 책임 커
첫째, 지방정부 재정파산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지방정부의 중앙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매우 높아 파산제도 도입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틀리지 않다. 지방 세입 비중이 지방자치 실시 이전인 1991년 40.4%에서 지난해 21.2%로 낮아진 데 대한 책임이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와 국회에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지방세 비중이 한국의 두 배인 43.1%에 달하기 때문에 재정파산제도를 도입해도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한국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50%를 넘는다는 것은 지방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교부금과 세외수입을 자체 재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방정부는 재정 운용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파산한 미국 디트로이트시는 시정개혁 실패와 기업의 혁신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2007년 일본 유바리시의 재정파산 역시 관광객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무리한 재정 투자와 운용에 원인이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가장 잘나갔던 인천시,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의정부시 등의 재정위기는 수요 예측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한국은 다양한 지방재정관리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세입과 세출에서 지방정부가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워 지방정부 파산제도를 도입해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사전과 사후, 심지어는 집행 과정에서까지 중앙정부(안전행정부)의 통제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중기지방재정계획, 투·융자심사, 지방채 발행 총액한도제, 지방예산 편성기준 제시, 예산 편성의 주민 참여 확대, 지방계약지도, 지방금고 운영지도, 지방 재정 분석 및 진단 등 전문가들도 외우기 벅찬 10여가지에 이르는 각종 지방재정관리제도가 있다. 최근에 생긴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2012년) 지방재정위기사전경보시스템(2011년) 등은 재정파산에 이르게 하지 않기 위한 중앙정부의 통제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마다 ‘선심성 복지’…지방 재정 위기로 내몰아
그러나 중앙 통제 방식은 지역 간 배분, 정무적 판단 등이 작용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세출 구조에서 괄목할 만하게 변한 대목은 사회개발비 비중 증대(39.3%→51.2%)와 경제개발비 비중 축소(64.9%→27.3%)다. 사회개발비 항목에 생활환경개선비와 주택 및 지역사회개발비가 포함된 데 따른 것이긴 하지만 사회복지 비용의 과다 지출이 중앙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지방선거 때마다 늘어나는 경로당과 사회복지시설은 이미 과다 내지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운용에 관심 없는 주민들의 욕구는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재정관리 통제 수단은 중앙정부에 의한 외부 통제여서 주민은 관심도 없고,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재정 분석 결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방 재정의 파탄 책임은 상당 부분 주민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다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관리제도는 주민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앞으로 지방 재정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이 경기 침체로 인한 중앙정부 세수 감소, 지방교부세 및 국고보조금의 감액이 예상된다는 데는 대부분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민의 행태가 여전히 개발 위주 정책에 매몰되거나 지역이기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한 오는 6월4일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 단체장과 의원 후보들이 과연 불필요한 사업을 조정하고, 주민들도 책임을 강조하는 후보자를 선택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따라서 주민, 지방의회, 지방정부 등 지방정부 주체들이 스스로 회생할 수 있도록 내부 통제 수단으로서 재정파산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임승빈 <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
반대 사후 파산 '징벌' 실익 없어…재정위기 예방에 집중해야
올해 민선 6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놓고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최근 여당 대표가 지방재정의 책임성을 높이려면 파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는 ‘돈 먹는 하마’에 비유될 정도로 낭비와 비효율이 많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방재정은 호화 청사 건립, 과시형 전시행사, 외화내빈형 축제 등으로 악화됐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태백의 오투리조트, 알펜시아, 용인과 김해의 경전철사업, 인천시의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와 송도신도시 및 지하철 투자 등은 지방재정 문제 거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들 지자체에 대해 단체장은 물론 주민도 책임이 없지 않은 만큼 파산을 선언해 책임을 물어야 다른 자치단체도 더 주의하고 책임 있게 재정을 운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파산제도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재정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정위험 판단 기준 모호…파산선고 내릴 객관성 부족
첫째, 파산제도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가 적지 않다. 기업이나 개인과 달리 자치단체 파산은 채무상환 능력 상실로 자치단체 기능 수행이 불가능해 중앙정부나 상급 자치단체의 관리가 필요한 상황을 뜻한다. 이런 재정위기를 타개하려면 주민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여 정상화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파산은 재정위험 최악의 상태로 자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금 등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는 재정 압박과 재정적자가 누적돼 지급 불능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는 재정위기와도 구분된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사례에서 보듯 재정파산을 통해 사후 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회수하거나 제약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파산제도는 결코 환자에 대한 사망선고가 아니라 회복과 재건을 위한 회생 프로그램이는 점이다.
둘째 사후적인 파산제도는 지방재정 건전성이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다. 물론 일부 지자체의 다양한 요인으로 재정 압박과 위기가 초래됐음을 전혀 부인할 수 없지만 파산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란 보장은 없다. 사람도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효과가 더 크다. 병에 걸렸을 때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주력해야지, 병이 생긴 원인에 대해 후회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봐야 실익은 별로 없다.
지방재정 건전성과 책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이며 사전적인 재정 관리·운용이 더 중요하다. 이미 한국은 다양한 재정관리 제도가 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경기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지급불이행)을 선언했지만 안전행정부의 조정을 통해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다양한 재정관리제도에 힘입어 예산편성 이전부터 집행, 사후 분석은 물론 사전 경보시스템까지 갖춰 파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제도가 너무 많아 효율적 연계와 통합적 운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사후 파산선고보다 사전적 재정관리로 재정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방재정 자율성 더 주고 지자체에 운용 책임 물어야
셋째, 파산이 초래할 파급효과와 영향을 고려하면 과연 누가 그 부담을 지게 되며, 어느 정도 개선될지 등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을 파탄내고도 책임지지 않는 세태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미래의 재정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일본 유바리시나 미국 디트로이트시처럼 파산 이후 소득과 경제력이 있는 주민은 대부분 이주하고, 대안이 없는 영세민과 노약자는 대규모 실업에 처해 가로등조차 없는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징벌적 의미의 파산보다 예방적 재정건전화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넷째, 재정위기가 어느 수준일 때 파산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지방채무는 27.1조원으로 예산 대비 15.4%지만 국가채무는 153%에 달한다. 물론 몇몇 지자체는 평균치를 웃돌기도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재정이 안정적이며 바람직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파산의 판단 기준이나 지표가 나라마다 다르다. 주로 채무비율과 채무상환비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충분히 재정위기를 감지할 수 있느냐는 결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정위기 요인은 매우 다양하며, 활용 가능한 판단지표와 자료 생산시기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파산제도는 일부 지자체의 재정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려 추후 야기될 대규모 재정위기를 예방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재정건전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부정적인 효과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5년에도 중앙 정부가 파산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우리 국민이 일벌백계의 자극적인 제도를 선택하기보다 보편적이며 예방적인 재정건전화 방안을 선호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손희준 <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 >
읽을 만한 자료
△지방재정 부실운용 실태와 개선과제(권아영, 2012)
△지방재정 건전성보장 입법론-지자체의 재정파탄방지 세미나(김광수, 2011)
△미국 지방재정위기의 발생과 관리제도에 관한 고찰(서정섭, 2008)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관리제도와 시사점-파산제도 중심으로(정창훈, 2011)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가능성 검토(김재훈, 2013)
△지방자치 선진화를 위한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 방안(손희준, 2011)
△지방자치론 6판(임승빈, 2013)
지자체 파산제란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위기에 처한 지방정부의 빚을 중앙정부가 청산하는 대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부채비율이 일정 기준을 넘은 지자체에 파산 선고를 하고, 예산 편성 권한이나 자치권을 박탈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일본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 채무(지방채)는 27조1252억원에 달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18조2076억원)에 비해 49.0% 증가했다. 숨겨진 빚으로 불리는 지방공기업 부채(2012년 기준 72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100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선거를 의식한 일부 지자체장이 전시·선심성 사업을 남발하고 지방공기업을 무분별하게 설립하면서 지방 재정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더 늦기 전에 지방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파산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자체 파산제를 도입하려면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재정부문 의사 결정을 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 수준인 재정 구조에선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칫 지방자치의 취지를 훼손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지자체 파산제 도입과 관련,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와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가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찬성 '지방 살림' 방만한 운용…제도적 퇴출 장치 필요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 선거로 뽑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 재정이 분권화돼야 한다. 헌법 117조 제1항은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고 있다. 이런 내용 중 하나가 자치재정권이다. 따라서 지방 정부의 파산을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주민이 가져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헌법과 각종 법률에서 한국보다 더 강하게 지방정부의 재정분권과 자치재정권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지자체 파산과 회생 절차를 담은 ‘연방파산법 9장’을 1934년 제정했다. 이 법의 기본 정신은 자치단체의 회생에 있다. 일본도 그 취지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개인파산제도의 핵심은 파산에 처한 개인을 회생시키는 것이지 파멸시키려는 목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파산제도 도입도 건전 재정 유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 자치단체의 재정위험성은 강도와 지속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재정압박→재정고통→재정파산으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에서는 지방정부가 재정압박, 재정위기의 단계를 넘어 재정파산에 이르게 됐을 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따라서 지방정부의 재정파산제도 도입이 필요한 논거는 다음의 두 가지에 있다고 본다.
재정자립도 평균 50% 넘어…지방정부, 재정위기 책임 커
첫째, 지방정부 재정파산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한국은 미국 일본과 달리 지방정부의 중앙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매우 높아 파산제도 도입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틀리지 않다. 지방 세입 비중이 지방자치 실시 이전인 1991년 40.4%에서 지난해 21.2%로 낮아진 데 대한 책임이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와 국회에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지방세 비중이 한국의 두 배인 43.1%에 달하기 때문에 재정파산제도를 도입해도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한국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평균 50%를 넘는다는 것은 지방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교부금과 세외수입을 자체 재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방정부는 재정 운용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파산한 미국 디트로이트시는 시정개혁 실패와 기업의 혁신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2007년 일본 유바리시의 재정파산 역시 관광객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무리한 재정 투자와 운용에 원인이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가장 잘나갔던 인천시, 경기도, 성남시, 용인시, 의정부시 등의 재정위기는 수요 예측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째, 한국은 다양한 지방재정관리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세입과 세출에서 지방정부가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워 지방정부 파산제도를 도입해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사전과 사후, 심지어는 집행 과정에서까지 중앙정부(안전행정부)의 통제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중기지방재정계획, 투·융자심사, 지방채 발행 총액한도제, 지방예산 편성기준 제시, 예산 편성의 주민 참여 확대, 지방계약지도, 지방금고 운영지도, 지방 재정 분석 및 진단 등 전문가들도 외우기 벅찬 10여가지에 이르는 각종 지방재정관리제도가 있다. 최근에 생긴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2012년) 지방재정위기사전경보시스템(2011년) 등은 재정파산에 이르게 하지 않기 위한 중앙정부의 통제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마다 ‘선심성 복지’…지방 재정 위기로 내몰아
그러나 중앙 통제 방식은 지역 간 배분, 정무적 판단 등이 작용하면 객관적이고 공정한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1995년 이후 세출 구조에서 괄목할 만하게 변한 대목은 사회개발비 비중 증대(39.3%→51.2%)와 경제개발비 비중 축소(64.9%→27.3%)다. 사회개발비 항목에 생활환경개선비와 주택 및 지역사회개발비가 포함된 데 따른 것이긴 하지만 사회복지 비용의 과다 지출이 중앙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지방선거 때마다 늘어나는 경로당과 사회복지시설은 이미 과다 내지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운용에 관심 없는 주민들의 욕구는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재정관리 통제 수단은 중앙정부에 의한 외부 통제여서 주민은 관심도 없고,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재정 분석 결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방 재정의 파탄 책임은 상당 부분 주민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다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관리제도는 주민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앞으로 지방 재정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이 경기 침체로 인한 중앙정부 세수 감소, 지방교부세 및 국고보조금의 감액이 예상된다는 데는 대부분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주민의 행태가 여전히 개발 위주 정책에 매몰되거나 지역이기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한 오는 6월4일 민선 6기 지방선거에서 단체장과 의원 후보들이 과연 불필요한 사업을 조정하고, 주민들도 책임을 강조하는 후보자를 선택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따라서 주민, 지방의회, 지방정부 등 지방정부 주체들이 스스로 회생할 수 있도록 내부 통제 수단으로서 재정파산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임승빈 <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
반대 사후 파산 '징벌' 실익 없어…재정위기 예방에 집중해야
올해 민선 6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재정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놓고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최근 여당 대표가 지방재정의 책임성을 높이려면 파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는 ‘돈 먹는 하마’에 비유될 정도로 낭비와 비효율이 많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방재정은 호화 청사 건립, 과시형 전시행사, 외화내빈형 축제 등으로 악화됐다.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태백의 오투리조트, 알펜시아, 용인과 김해의 경전철사업, 인천시의 2014년 아시안게임 개최와 송도신도시 및 지하철 투자 등은 지방재정 문제 거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들 지자체에 대해 단체장은 물론 주민도 책임이 없지 않은 만큼 파산을 선언해 책임을 물어야 다른 자치단체도 더 주의하고 책임 있게 재정을 운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파산제도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재정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정위험 판단 기준 모호…파산선고 내릴 객관성 부족
첫째, 파산제도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가 적지 않다. 기업이나 개인과 달리 자치단체 파산은 채무상환 능력 상실로 자치단체 기능 수행이 불가능해 중앙정부나 상급 자치단체의 관리가 필요한 상황을 뜻한다. 이런 재정위기를 타개하려면 주민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여 정상화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파산은 재정위험 최악의 상태로 자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현금 등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는 재정 압박과 재정적자가 누적돼 지급 불능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나는 재정위기와도 구분된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사례에서 보듯 재정파산을 통해 사후 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회수하거나 제약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파산제도는 결코 환자에 대한 사망선고가 아니라 회복과 재건을 위한 회생 프로그램이는 점이다.
둘째 사후적인 파산제도는 지방재정 건전성이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다. 물론 일부 지자체의 다양한 요인으로 재정 압박과 위기가 초래됐음을 전혀 부인할 수 없지만 파산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란 보장은 없다. 사람도 건강할 때 건강을 챙겨야 효과가 더 크다. 병에 걸렸을 때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주력해야지, 병이 생긴 원인에 대해 후회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봐야 실익은 별로 없다.
지방재정 건전성과 책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이며 사전적인 재정 관리·운용이 더 중요하다. 이미 한국은 다양한 재정관리 제도가 있고,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경기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지급불이행)을 선언했지만 안전행정부의 조정을 통해 재정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다양한 재정관리제도에 힘입어 예산편성 이전부터 집행, 사후 분석은 물론 사전 경보시스템까지 갖춰 파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제도가 너무 많아 효율적 연계와 통합적 운용이 요구된다.
따라서 사후 파산선고보다 사전적 재정관리로 재정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방재정 자율성 더 주고 지자체에 운용 책임 물어야
셋째, 파산이 초래할 파급효과와 영향을 고려하면 과연 누가 그 부담을 지게 되며, 어느 정도 개선될지 등을 감안할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을 파탄내고도 책임지지 않는 세태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미래의 재정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일본 유바리시나 미국 디트로이트시처럼 파산 이후 소득과 경제력이 있는 주민은 대부분 이주하고, 대안이 없는 영세민과 노약자는 대규모 실업에 처해 가로등조차 없는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징벌적 의미의 파산보다 예방적 재정건전화 대책에 집중해야 한다.
넷째, 재정위기가 어느 수준일 때 파산인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지방채무는 27.1조원으로 예산 대비 15.4%지만 국가채무는 153%에 달한다. 물론 몇몇 지자체는 평균치를 웃돌기도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재정이 안정적이며 바람직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파산의 판단 기준이나 지표가 나라마다 다르다. 주로 채무비율과 채무상환비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충분히 재정위기를 감지할 수 있느냐는 결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정위기 요인은 매우 다양하며, 활용 가능한 판단지표와 자료 생산시기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파산제도는 일부 지자체의 재정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려 추후 야기될 대규모 재정위기를 예방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재정건전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부정적인 효과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5년에도 중앙 정부가 파산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우리 국민이 일벌백계의 자극적인 제도를 선택하기보다 보편적이며 예방적인 재정건전화 방안을 선호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손희준 <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 >
읽을 만한 자료
△지방재정 부실운용 실태와 개선과제(권아영, 2012)
△지방재정 건전성보장 입법론-지자체의 재정파탄방지 세미나(김광수, 2011)
△미국 지방재정위기의 발생과 관리제도에 관한 고찰(서정섭, 2008)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위기관리제도와 시사점-파산제도 중심으로(정창훈, 2011)
△지방자치단체 파산제도 도입가능성 검토(김재훈, 2013)
△지방자치 선진화를 위한 지방재정 건전성 강화 방안(손희준, 2011)
△지방자치론 6판(임승빈,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