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1차대전 100년, 위험한 퍼즐 속 한국
올해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세계적으로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금 일본과 중국 간 관계가 1차대전 전 영국과 독일 간 관계와 같다고 해서 논란을 빚었다.

1차대전은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애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정치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우선 전쟁 자체로 인한 피해가 컸다. 전사자에 기아와 질병으로 죽은 민간인까지 합쳐 사망자는 4000만명에 달했고, 전비와 재산상 손실은 지금 돈으로 3조달러를 훌쩍 넘었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의 장기적 결과다. 1차대전은 그전 수십 년 동안 진행돼 왔던 ‘제1차 세계화’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전쟁 중 각국이 구축한 자급체제를 전쟁 전의 자유무역체제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쟁 중 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에 전쟁 전의 국제금본위제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1차대전은 세계에서의 영국 리더십이 몰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전후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세계의 리더십 역할을 맡을 의사가 없었다. 그것은 세계적 충격이 가해졌을 때 국제 공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는 1930년대 대공황 하에서 경쟁적 보호무역과 환율 인상 같은 인근궁핍화 정책과 블록경제 형성으로 이어져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중요 원인이 됐다.

1차대전이 촉발한 그런 위기 국면은 20세기 후반 들어 새로운 체제가 들어섬으로써 해소될 수 있었다. 국제 공조를 통해 자유무역체제와 통화질서를 회복한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는 위기를 벗어나 ‘제2차 세계화’가 진행됐다.

동아시아는 제2차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다. 처음에는 일본이, 다음에는 한국과 대만이, 그 다음 중국이 그런 추세에 힘입어 ‘기적’적 성장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기적적 성장이 동아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과 제3의 경제대국이 영토 문제와 과거사를 놓고 으르렁대는 것은 중동 같은 지역에서 작은 나라들이 종교문제로 다투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현재의 중국과 일본을 1차대전 전 독일과 영국에 비유한 아베의 이야기는 틀린 점이 많다. 1인당 생산으로는 아직 개도국인 중국을 당시 과학·기술에서 세계를 리드하던 독일에 비할 수는 없다. 공식적으로는 ‘군대’도 없는 일본과 당시 세계의 헤게모니국이었던 영국과 비교하는 것은 더 문제다.

1차대전 전 독일과 영국에 대한 비유는 현재의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앞으로의 중국과 미국에 적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결국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의 문제다. 동아시아의 주변국은 그런 구도에 대응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일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선택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은 미국 편에 설 것이다. 달리 가고 싶어도 중국의 행태로 보아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19세기에 그랬듯이 나름대로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갈 것인가. 일본보다 훨씬 복잡하다. 미국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미국의 ‘역외 균형자’ 역할을 가장 필요로 하는 나라가 한국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중국과의 지리적 거리, 역사적 유산, 경제 통합의 정도로 보아 일본과는 분명히 다르다. 거기에다 북한 문제와 통일 문제까지 얽혀 있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세계에서 1차대전이나 그 비슷한 대규모 분쟁이 일어난다면 동아시아에서 ‘애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세계적 재난이 될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기적을 일거에 날릴 것이다. 한국은 당연히 그런 구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차대전 발발 100년에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