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생명과학 등 LG그룹 계열사 네 곳이 국내외 12개 항공사가 유류할증료를 담합해 피해를 입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4억4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전자 화학 등 수출 물량이 많은 LG 계열사가 항공사 간 화물 운송 유류할증료 담합으로 수출 경쟁력에 타격을 입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입증이 가능한 최소 피해액에 대해 손해배상을 제기한 뒤 재판 과정에서 추가로 손해액을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일 항공사들에 소장부본을 보냈다.
소송 대상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싱가포르항공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등 12개 항공사다.
LG 측은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16개국 21개 항공화물 운송사업자들이 항공화물 운임을 담합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1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실에 근거해 소송을 시작했다. 당시 이들 항공사는 1990년대 말 항공화물 운임 인상을 목적으로 유류할증료를 일괄 도입하려다 실패하자 노선별로 담합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 12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유류할증료를 신규로 도입하거나 변경하는 방법으로 담합을 해온 것이다.
이번 소송은 수출기업들이 항공사 간 담합을 문제 삼아 손해배상을 청구한 첫 사건으로, LG가 승소하면 다른 국내 수출업체들이 줄소송에 나설 전망이다.
LG 계열사와 항공사들은 담합으로 인한 손해액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두고 뜨거운 법적 공방을 벌이게 된다. LG는 항공사 담합으로 인한 과도한 항공화물 운임 부담으로 결과적으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점을 부각시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대형 로펌에서 기업 사건을 전담하는 한 변호사는 “수출기업이 구체적인 피해액을 입증하기가 쉽진 않지만 비슷한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항공사를 이용해 제품을 수출한 중견·중소기업들이 소송전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비슷한 사례로 방위사업청이 공정위로부터 담합 판정을 받은 5개 정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들 수 있다. 공정위는 2000년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인천정유(SK인천석유화학) 등 5개사가 1998년부터 3년간 군납 유류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통해 부당 이익을 취했다는 이유로 190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를 근거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8월 군납 유류 입찰 과정에서 사전에 모의한 5개 정유사로부터 135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받아 국고로 환수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에서 공정거래 사건을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방위사업청이 승소한 점에 비춰 이번 소송에서도 LG 측이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담합 결정에 불복해 항공사들이 소송을 냈지만 1, 2심에서 모두 패하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판결이 나오면 수출업체들이 항공사를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유류할증료
항공유가가 단기간 급등할 경우 항공사가 초과 부담하는 유류비를 보전받기 위해 기본운임에 추가로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운임.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5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21개 국내외 항공사가 항공화물 운임 인상을 담합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류할증료를 도입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12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