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숙 우신피그먼트 사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친환경 안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장성숙 우신피그먼트 사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친환경 안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희경 기자
“색(色)을 다루는 게 정말 신 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제 일도 아니었는데 매일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혼자 색깔을 섞어 만들어볼 정도였으니까요.”

인천 백령도에서 고교를 갓 졸업하고 19세에 서울의 안료(색을 내는 색소) 가게에서 경리를 맡아 일하던 한 소녀는 다른 직원들이 안료 배합을 하는 것을 보며 곧잘 따라 하곤 했다. 이 소녀는 1977년 가게가 폐업 위기에 처하자 그동안 모아둔 돈과 이곳저곳에서 빌린 돈 600만원으로 가게를 인수했다. 당시 22세였다. 올해로 37년째 안료 제조업체 ‘우신피그먼트’를 이끌고 있는 장성숙 사장의 얘기다.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겠다
안료는 페인트 플라스틱 화장품 가죽 등 색상이 필요한 대부분 제품에 들어간다. 장 사장은 주로 페인트와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안료를 취급하고 있다. 거래처는 국내외 400여개에 달한다. 국내 무기안료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88억원.

장 사장은 “여성이 사업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시대에 열정 하나로 도전장을 내밀었다”며 “세상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이겠다는 신념이 37년 동안 사업을 일궈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성장 발판은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째인 1980년에 마련됐다. 세계 안료 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독일 바이엘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고 원자재를 직수입하게 됐다. 장 사장은 “안료 배합에선 언제나 똑같은 색깔을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독일로 건너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배합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문을 닫을 뻔한 적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고 가정생활과 사업을 병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장 사장은 ‘6개월’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사업 시작 당시 “6개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비웃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이겨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힘을 냈다.

◆생산공장 늘리며 제2 도약

장 사장은 색깔만을 연구하는 ‘컬러리스트’와 함께 다양한 색상을 개발하고 있다. 45명의 직원 중 입사한 지 10~20년이 된 사원 7명을 엄선해 ‘컬러센터’에서 각종 배합 작업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장 사장은 “색깔은 작은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며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컬러리스트를 통해 고객의 취향에 맞는 색깔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에게서 많은 주문을 받고 있는 것도 색에 대한 전문성 때문이다. 에버랜드, 리움미술관, 파주 출판단지 등에 우신피그먼트의 친환경 안료가 쓰였다.

지난해 12월엔 전북 익산에 제2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작년에 처음으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며 “세계적으로 친환경 안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5~6년 안에 300억원의 수출액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700억원 매출 목표

올해 포부를 묻자 그는 A4 용지를 한가득 꺼내 들었다. 직접 전 직원에게 신년 계획과 각오를 물어본 자료였다.

장 사장은 “직원들이 고품질 안료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자고 제안했다”며 “직원들의 생각이 곧 나의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근에 2020년까지 7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자는 목표도 함께 세웠다”고 덧붙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