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쟁한 투자은행가들이 연초부터 체면을 구기고 있다. 터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연초에 투자자들에게 제시한 전망이 벌써부터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해 11월 멕시코 페소화를 사고 일본 엔화를 팔라고 했지만 올 들어 상황은 완전히 반대가 됐다. 덴마크의 단스크방크도 지난해 말 투자자들에게 “터키 리라화를 사고 덴마크 크로네화를 팔라”고 권유했다가 한 달 만에 전략을 철회했다. 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올해 터키 리라화 하락폭 중간값은 2% 정도인데, 리라화는 벌써 5% 넘게 빠졌다. 통신은 “신흥국 3곳 중 1곳에 대한 연간 예측이 이미 어긋났다”고 전했다.

각종 수치와 데이터로 무장한 투자은행가들조차 연초부터 헛다리를 짚는 이유는 워낙 돌발변수가 많아서다. 일단 터키, 우크라이나, 태국 등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수치 분석으로는 예측이 어렵다. 중국 경제 경착륙 우려와 그림자 금융의 붕괴 가능성도 올초 갑자기 불거졌다.

베노아 안느 소시에테제네랄 통화전략가는 “전략가로서 투자자들에게 투자 방향을 알려줘야 하는데 지금은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토머스 스톨퍼 골드만삭스 수석전략가는 “지금 신흥국 통화는 수치상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며 “올해 투자은행의 통화전문가 중 일부는 전성기를 맞겠지만 나머지는 직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