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설날] "청국장 맛 나는 한국 시골이 좋아요"
“2014년 새해가 밝았네요. 건강과 행복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웃음’이 가득한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게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즐거운 설날] "청국장 맛 나는 한국 시골이 좋아요"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흰 눈처럼 새하얀 얼굴, 똑 부러지는 말투로 속담도 척척 꺼내 놓는다. 눈만 감고 듣는다면 한국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어느덧 한국 생활 9년차를 맞은 파라과이 여자, 아비가일 알데레테(28)를 두고 하는 말이다.

2006년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을 때가 스무 살. 그가 8년 만에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 프로그램 ‘섬마을 쌤’을 통해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즐거운 설날] "청국장 맛 나는 한국 시골이 좋아요"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드럼 연주자 브래드, 가나에서 온 청년 샘 오취리와 매달 섬마을을 찾아 분교 초등학생들에게 원어민 교사가 돼 영어를 가르치며 ‘진짜 한국’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그의 표정에는 한국에 대한 애착이 넘쳐흐른다.

“파라과이에는 한국의 설 같은 연휴가 없어요. 매년 3월에 부활절을 챙기는 게 전부죠. 아홉 번째 설을 맞다 보니 조금 요령이 생겼어요. 오히려 명절에는 도시가 텅텅 비어서 복잡한 느낌도 없고 좋아요. 요즘 한국 음식을 요리하는 데 푹 빠져서 설 연휴 기간에는 그렇게 음식도 만들어 먹고 푹 쉬고 싶어요.”

한국에서 아홉 번째 설을 맞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파라과이에서 준비 중이던 의사의 꿈을 접고 어린 나이에 홀로 한국에서 대학생활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며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외국인 여성에게 으레 따라붙는 선입견에 상처받은 일도 많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생활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에는 택시 기사가 ‘하루에 얼마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한국이 좋아요. 이제는 성격부터 식성까지 모두 변해서 ‘내가 정말 한국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외국인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느껴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스스럼 없이 다가오거든요.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데 언어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 같아요.”

[즐거운 설날] "청국장 맛 나는 한국 시골이 좋아요"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연일 온라인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방송 활동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드러내 보였다.

“방송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어요. 방송에서 만난 분들을 사석에서 뵈면 안타까운 순간이 더러 있거든요. 한국에서 스타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제게 ‘TV에도 다 나오고 팔자 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저의 행복은 방송 활동으로 결정되지 않아요. 이것도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죠.”

아비가일은 지방 곳곳에서 촬영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한국 연예인들과 이야기해보면 스튜디오에서 편하게 녹화하는 걸 원하지만 저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만나는 청국장 맛 나는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아비가일은 “올해 설 연휴는 어머니와 조용히 쉬면서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2014년 새해를 맞는 계획은 빼곡하다.

“평소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올해는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그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예능 프로그램 외에 연기에도 도전해 보려고요. 다니엘 헤니 같은 외국인 남자 배우는 있는데 여자는 없잖아요. 전지현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네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죠?”

글=김광국 한경 텐아시아 기자 realjuki@tenasia.co.kr

사진=구혜정 한경 텐아시아 기자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