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포퓰리즘 의원입법이 넘쳐나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의원입법을 평가한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치주의에 역행하는 포퓰리즘 의원입법이 넘쳐나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의원입법을 평가한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직접 발로 뛰는 ‘현장 중시형 CEO’다. 지난 한 해 동안 14개 지방변호사회와 제주대를 비롯 전국의 25개 대학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모두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한 것이 단적인 예다. 대한변협 61년 사상 첫 직선제 협회장 선거에서 야간고와 야간대, 지방변호사 출신이 당선되자 변호사업계는 큰 기대를 걸었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위 회장의 성적표는 어땠을까.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 위 회장을 지난달 29일 서울 테헤란로 대한변협회관에서 만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꼽아주십시오.

“변호사가 없는 무변촌 위주로 마을변호사를 한 명씩 두도록 했습니다. 네이버에서 ‘마을변호사’라고 입력하면 466개 지역에 변호사 730여명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주소가 뜹니다. 소송 금액이 적어 변호사를 선임하기에 적절치 않은 사건인 경우 무료로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젊은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공익법무관처럼 마을변호사 활동을 군복무로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생각입니다.”

▷청와대 규제 관련 회의에도 참석하셨다고요.

“한국에는 규제가 너무 많아요. 특히 금융의 국제화에 규제가 큰 걸림돌이라고 만나는 전문가마다 이구동성입니다. 규제 철폐에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이 앞장서겠다고 하니 장관들과 국내외 금융회사 수장이 다 모인 청와대에 저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관료들 때문에 쉽지 않겠더라고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권한이 너무 세요. 후속으로 지난달 24일 금융서비스업 발전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 1차 회의가 열렸는데 금융위에서 준비한 자료를 읽는 데 30분을 소요했습니다. 토론도 별로 없고 민간 쪽은 들러리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회의라면 대한변협이 더 이상 참가할 의미가 없다고 불만을 전했습니다.”

▷대한변협 산하에 입법평가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상당수 의원입법이 ‘포퓰리즘 입법’ ‘예산없는 입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회의 활동이 오히려 법치주의에 역행하고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한건주의 의원입법에 철퇴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걸러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시민단체도 있지만 무게감이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변호사, 교수, 언론인들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이르면 올 상반기 중 입법에 순위를 매긴 백서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의 세금 낭비를 감시하는 특별위원회도 가동 중이시죠.

“지자
[월요인터뷰] 위철환 대한변협 회장 "국회 포퓰리즘 넘쳐나…의원입법 평가해 순위 매기겠다"
체와 지방공기업의 부채가 심각합니다. 자체 예산으로 빚을 감당할 수 없는 디폴트(채무상환불능)나 실질적 파산 상태인 지자체가 많습니다. 지난해 국민적 감시·통제장치로 ‘국민소송법안’을 입법청원했는데 아직 답변을 못 받은 상태입니다. 새만금 방조제 보강공사 사건, 태백시 오투리조트 사업에 대해 작년 11월 2차 조사 결과 새만금공사 관련 공무원 4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태백관광개발공사에 파산 검토를 제안했습니다. ”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논란이 많습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17년부터는 로스쿨 변호사시험밖에 남지 않는데 로스쿨은 아직 검증이 덜 됐습니다. 특히 로스쿨은 입학단계부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로스쿨 입학과 로펌 취업 등에서 면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명문대 출신이나 집안 배경이 좋은 학생 위주로 뽑는다고 합니다. 변호사시험이 별볼일 없는 자격시험으로 전락할수록 여유 있는 집안 출신만 로스쿨에 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시대 귀족 또는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했던 제도)라는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200~300명을 현행 사법시험 형태로 뽑으면 로스쿨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합격 후 3년간 또다시 공부해야 하는 예비시험은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평가 하위법관 공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관 평가를 위한 설문에 답변율이 아직 낮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변호사들이 법관을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대법원이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하위법관들의 명단을 받으면 인사에 반영해야 하는데 오히려 승진시켜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누구를 위한 대법원인지 모르겠어요.”

▷‘해결사검사’ 등 잇따른 추문으로 검찰은 신뢰 회복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기소와 불기소 여부를 검찰만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입니다. 특히 불기소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검찰이 불기소하면 고검에 항고하거나 법원에 재정신청할 수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기소라도 하면 법원에서 무죄 여부를 가릴 수 있지만 불기소하면 피해자는 해결 방법이 없는 거죠. 이런 점만 보면 검사가 판사보다 훨씬 힘이 센 겁니다. 검사가 무혐의처분하면 사실상 견제장치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일반시민이 재판에 참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영미국가의 대배심제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사재판에서도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도록 하자는 입장이시죠.

“변호사 살 돈이 없어 이길 소송에서 지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면 사법제도와 법조계를 원망하게 되죠. 하지만 민사소송의 ‘변론주의’ 원칙상 변호사로부터 올바른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 적시에 적절한 대응을 못해 억울하게 패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형사사건의 경우 구속된 피고인 재판에서는 반드시 변호사가 있어야 합니다. ”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당국의 강경한 태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습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는데 최정상급 기업들 덕분입니다. 외국 로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이런 글로벌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업을 일으킨 분들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해선 보다 투명하고 엄격한 잣대로 기업을 경영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젊은 변호사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

“변호사들에게 아직 기회는 많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정보 유출 등 정보기술(IT) 분야도 블루오션이고, 해외시장으로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개인정보 인증심사에 변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대한변협에서 관련 법률을 만들고 교육도 시키고 있습니다. 세계변호사협회(IBA) 2019년 총회를 한국에서 유치한다는 목표도 세워놓고 있습니다. 법률시장 개방과 국제화는 영어와 국제감각이 뛰어난 젊은이들에게 또 다른 기회입니다.”

■ 위철환 협회장은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선거 사상 첫 직선제를 통해 지난해 1월 임기 2년의 제47대 협회장에 당선됐다. 판검사 등 전관이나 대형 로펌 출신이 아닌 평범한 지방변호사의 변협 최고수장직 당선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기존의 협회장 선거는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후보를 1명씩 추천하고, 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숫자에 비례해 뽑힌 대의원들이 이들 중에서 협회장을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었다. 때문에 전체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회 추천 후보가 사실상 회장으로 추대됐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위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생을 살았다. 1974년 시골에서 상경한 뒤 중동고 야간을 다니며 신문배달을 하는 등 주경야독으로 서울교대에 진학했으며, 졸업 후에는 6년가량 교편을 잡았다. 담임을 맡고 있던 반 학생이 돈이 없는 탓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재판에서 패소하는 딱한 사정을 접한 것이 변호사의 꿈을 꾸게 된 직접적 계기다. 낮에는 교편을 잡고 밤에는 성균관대 법대 야간에 다니는 강행군 끝에 1986년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8기)에 합격했다. 수원지방변호사회장,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취미는 등산.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