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겁없는 베팅…외국인 1조 팔때 '폭풍 매집'
개미 투자자들이 폭락장을 맞아 공격적인 주식 매집에 나섰다.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 이어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증시까지 휘청인 여파로 쏟아진 외국인 매물들을 부지런히 주워담았다.

설 연휴 후 2거래일 동안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 규모는 5630억원.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도액 1조618억원의 절반을 넘는다. 외국인에서 개인으로 ‘손이 바뀐’ 대표적 종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다.

○새로운 ‘주포’로 떠오른 개인

개미 겁없는 베팅…외국인 1조 팔때 '폭풍 매집'
코스피지수는 4일 전날보다 1.72% 급락한 1886.85에 장을 마쳤다. 6554억원에 달하는 외국인들의 ‘순매도 폭탄’이 낙폭을 키웠다.

외국인이 많이 판 주식은 현대차(순매도 668억원), 삼성전자(613억원), SK하이닉스(595억원), 현대모비스(449억원), 포스코(367억원) 등이었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빅5’ 모두가 매도 상위 5개 종목에 포함됐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테이퍼링으로 글로벌 신흥국 펀드에서 사상 최대 폭의 자금 유출이 진행되고 있는 여파가 한국에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털어낸 종목은 고스란히 개인의 쇼핑 바구니로 옮겨졌다. 개인투자자들의 이날 삼성전자 순매수액은 외국인의 매도 규모를 소폭 상회하는 657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 순매수액도 479억원에 달했다. 삼성증권(순매수 349억원), 신한금융지주(109억원) 등의 금융주와 삼성중공업(297억원), 현대중공업(130억원) 등 조선주들도 개인 순매수 상위권에 포함됐다.

기아차 뺀 시총 상위주 전멸

증권가 일각에서는 외국인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손실을 냈던 개인투자자들이 모처럼 ‘절묘한 타이밍’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연초 조정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커졌다”며 “신흥국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2분기 중에는 확실한 반등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도 “현시점의 주가는 상장사 청산가치에 근접한 수준”이라며 “1880선 전후로 적극적인 매수를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익실현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테이퍼링 쓰나미가 진정된다 하더라도 중국 경기둔화 리스크는 여전하다”며 “적어도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무렵까지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들의 매수에도 불구하고 개별 종목 주가는 힘을 쓰지 못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 중에선 미국 시장 점유율 지표가 긍정적으로 나온 기아차(0.75%)만 상승했다. 삼성전자(-1.81%), 현대차(-2.38%), 현대모비스(-1.83%), SK하이닉스(-3.82%), 포스코(-1.69%) 등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자동차주들은 장 초반 원화가치 하락에 대한 수혜 기대감으로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외국인의 매도 규모가 확대되면서 낙폭이 커졌다. 업종으로 구분해도 오른 업종은 비금속광물(0.02%)이 유일했다. 기계, 통신, 증권 등은 2~3% 폭락했다.

코스닥지수도 이틀 연속 하락했다. 전날보다 6.06포인트(1.18%) 하락한 507.56으로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셀트리온(-1.48%), 서울반도체(-2.67%)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이 약세였다.

송형석/이고운/황정수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