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경북 포항신항에 있는 동국제강 물류하역사 인터지스의 전용부두. 하역 인력을 제공하는 경북항운노조가 3개월여 태업에 가까운 준법투쟁을 벌이면서 하역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었다. 사흘 전 2만4000여t의 러시아산 슬라브(철강후판 원재료)를 실은 배가 도착했지만 아직 2만여t을 하역하지 못한 상태였다. 회사 관계자는 “대법원이 복수노조인 포항항운노조의 노무공급권을 인정했는데도 경북항운노조는 계약을 맺지 말라며 준법투쟁이라는 ‘떼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하역이 늦어져 입은 손실만 20억원대”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폐업할 판

인터지스는 지난해 11월1일 국내 항만 중 처음으로 복수노조인 포항항운노조를 단체교섭 대상으로 선정했다. 복수노조의 노무공급권을 인정한 지난해 6월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조치였다.

경북항운노조는 ‘포항항운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철회하라’며 준법투쟁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동국제강에 공급하는 슬라브 하역처리 속도는 이전보다 10일가량 늦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장당 평균 25t에 달하는 슬라브 하역 물량이 종전 시간당 20~25장에서 지금은 3~5장으로 줄었다”며 “체선료가 눈덩이처럼 불어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지스는 포항항운노조와 단체교섭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경북항운노조에 t당 2400원의 하역비를 지급했는데 이는 포스코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이라며 “포스코 단가로 연간 16억원이면 충분한 것을 40억~50억원을 부담해 항운노조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번 주 단체교섭 공고를 다시 내고 이달 말부터 포항항운노조에 하역을 맡길 계획이다. 경북항운노조가 교섭에 응하면 절차에 따라 항운노조를 선정키로 했다.

이에 대해 경북항운노조는 “인터지스가 하역비 등을 일방적으로 낮추면 부산 등 전국항운노조와 연대해 물류를 마비시키겠다”고 주장했다.

○일감 못 찾는 포항항운노조 조합원들

경북항운노조 소속 조합원 43명은 지난해 7월 항운노조로는 처음으로 복수노조인 포항항운노조를 설립하고 노무공급권을 허가받았다. 김영조 위원장(62)은 “기존 노조의 조직 운영 및 회계 등이 불투명해 복수노조를 만들었다”며 “100년 노무 독점구조를 깨는 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항항운노조가 신청한 근로공급사업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불허가 처분을 내리면서 지루한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포항항운노조는 2년여간 고용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노무공급권을 최종 인정받았다.

경북항운노조 소속이던 3년 전 월평균 임금 567만원으로 전국 항운노조 상위 5위권이던 포항항운노조 조합원들은 일감을 찾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다. 최병찬 포항항운노조 총무부장은 “대법원 판결만 나오면 항만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며 “일감을 찾아 건설 공사장을 헤매는 조합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포항항운노조 한 조합원은 “대법원도 항운노조의 독점적 노무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우리만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경북항운노조의 집단행동에 고용부와 포항항만청은 ‘준법투쟁 중단 권고문’만 보냈을 뿐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포항=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