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석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귀포 석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최근 도심의 신축 빌딩 중에는 유리와 철을 많이 사용한 ‘가벼운’ 건축이 많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런 건축물은 자연미가 결여돼 너무 차갑다. 건물에 인간적 체온과 자연의 야성을 녹일 수는 없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람의 조형’전은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탐색하는 데 일생을 바친 재일동포 출신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에게 바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유족의 소장품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이타미의 건축 작업뿐 아니라 회화·서예 등 500여점을 선보인다. 1970년대부터 말년의 제주도 프로젝트까지 40년에 걸친 건축 역정이 근원, 전개 등 6부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이타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즈오카는 바다와 가까웠고 이런 자연환경은 그로 하여금 물, 바람 등 사물에 대해 깊이 통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도쿄 무사시노 공대를 졸업한 그는 청년 시절 서구의 첨단 건축기법보다는 물질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 “토착 재료를 사용해 그 땅이 지닌 오래된 가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돌을 중심으로 목재, 대나무를 결합한 육중하고 원시적인 건축물을 지향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의 자연친화적 건축의 백미는 말년의 제주도 프로젝트였다. 물, 바람, 돌이 많은 삼다도의 특징을 건물구조 및 재료와 결합한 ‘수·풍·석(水·風·石)미술관’, 포도알 모양으로 지붕을 표현한 포도호텔, 물 위에 떠 있는 노아의 방주를 본떠 설계한 방주교회는 국내외 건축계에서 뜨겁게 주목받았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라던 그의 진솔한 마음이 그가 그린 스케치와 설계도에 고스란히 남아 관객의 마음을 포근히 감싼다.

이타미의 건축은 세계 건축계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3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예술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정다운 감독의 영상물 ‘또 다른 물, 바람, 돌’(김종신 제작)을 상영해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는 13일에는 과천관 소강당에서 학술세미나도 열린다. 7월27일까지. (02)2188-065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