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황창규와 5년 전의 데자뷔
“시베리아요? 시리아입니다.” KT 한 직원은 요즘 회사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지난주 황창규 회장이 취임한 후 조직 개편, 임원 인사, 계열사 대표 해임 등 ‘새판짜기’를 단행하면서 KT 내부는 어수선하다. 황 회장의 혁신은 단호했다. 130여명이던 임원 수를 30% 가까이 줄였다. 본사 지원부서 임원 자리는 절반 이상 사라졌다. 특히 이석채 전 회장이 영입한 외부 인사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KT 출신 ‘올드보이’를 대거 중용했다. 53개 계열사 수장 교체 작업도 시작됐다. KT에 감도는 긴장감은 인사폭과 강도가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오죽하면 엄동설한 시베리아가 아닌 내전 상황의 시리아에 빗댔을까.

처음에는 혁신, 나중에는 실책

시곗바늘을 5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9년 이 전 회장(당시 사장) 취임 때와 너무 흡사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기시감)라고 할까. 검찰 수사로 전임 최고경영자(CEO)가 자진 사퇴하고 KT의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된 시작부터가 판박이다. 취임 후 행보도 마찬가지다. 취임 당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임원 수를 축소한 것이나 둘째 날 임원회의에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임원들이 급여 일부 반납을 결의한 것 등은 이미 경험했던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계열사 대표 해임도 예정된 수순이다. 앞으로 사업 재편과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2009년과 다른 듯 닮은 KT 상황이 주목받는 것은 ‘황창규호(號)’의 혁신이 5년 전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 전 회장도 취임 초기엔 평이 괜찮았다. ‘올 뉴(All New) KT’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변화와 혁신을 주창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인원 감축도 했다. 황 회장이 내세운 현장중심 경영, 신상필벌 원칙, 투자와 비용 원점 재검토 등은 이 전 회장도 강조했던 경영원칙이다. 이 전 회장은 KT-KTF 합병을 밀어붙이고, 아이폰을 도입해 스마트 혁명을 주도하며 한때 ‘혁신 전도사’로 불렸다. 하지만 지나친 외부인사 영입과 내부 소통 실패로 조직 내 갈등과 균열을 키웠다. 최대 실책이었다. ‘탈(脫)통신’을 외치며 몸집을 불렸지만 주력사업인 통신 경쟁력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혁신이 필요하다는 진단은 옳았지만 처방이 잘못된 것이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

‘황의 혁신’에 대해 KT 안팎에선 대체적으로 합격점을 주고 있다. 통신업의 부활을 강조한 것이나, 내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용을 꾸린 것도 위기 타개를 위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평이다. 소통의 리더십을 내세운 것도 전임자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그러나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조직 재정비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이석채 색깔 지우기’나 직원들의 상실감을 달래주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KT가 직면한 위기를 넘기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한 시점이다.

황 회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통신시장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SK텔레콤은 여전히 건재하고, LG유플러스도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황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융합 서비스를 키워 ‘1등 KT’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1등 목표를 달성하기에 KT의 체력은 너무 약해졌고, 발등에 떨어진 과제도 너무 많고 무겁다.

양준영 IT과학부 차장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