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社 1병영] 백운찬 관세청장 "관가의 '카리스마 백' 별명은 軍서 얻은 자신감 덕분"
사실 군 생활을 떠올리면 혹독한 훈련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럼에도 나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군 생활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은 나에게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교훈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1982년 4월 해군장교(OCS 73차)로 입대했다.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진주세무서에서 총무과장으로 근무한 지 2개월 만이었다. 입대와 함께 진해에서 4개월 동안 고된 훈련을 받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퇴함훈련’과 ‘지옥주 훈련’이다.

퇴함훈련은 배가 폭격을 당하거나 화재가 났을 때 함을 벗어나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이다. 모든 훈련병들은 완전 군장 상태에서 로프에 목총을 끼우고, 함 위에서 15m 아래 바닷물로 뛰어내려야 한다. 그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고 나면 손에 쥐고 있던 목총을 물속에 빠뜨린 훈련병들이 속출한다.

총을 잃은 훈련병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전체 기합 후 재훈련이다. 동기의 잘못으로 전체 기합을 받던 당시엔 억울한 마음도 들고, 힘들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지옥에서도 살아 돌아오라”는 지옥주 훈련은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취침 없는 48시간 행군과 하수구가 모이는 진해 시궁창에서의 잠수훈련으로 온몸이 피곤하고 악취가 진동했지만 뜨거운 전우애로 이겨낼 수 있었다.

진해에는 해군 훈련의 요람이라 불리는 천자봉이 있는데, 매주 천자봉 정상 등반 훈련을 한다. 선착순으로 정상에 있는 천자봉을 찍고 내려오는 훈련인데, 이 선착순이란 게 끝이 없다. 낙오자들이나 하위 순위권은 상위에 들 때까지 반복 훈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등반 자체만으로도 힘든데, 일정 순위에 못 들면 다시 올라갔다 와야 하니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훈련 강도였다. 고된 훈련이 반복되다 보면 두 가지가 단련된다. 힘든 훈련도 거뜬히 받을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불가능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다. 군에서 제대하고 시간이 지나 체력은 그때보다 떨어졌지만, 그 정신력과 자신감만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훈련을 마친 후 2년여간은 정훈장교로 해군본부에서 정훈교재 제작과 낙도 홍보단 활동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군 생활은 진해 해군 제2사관학교에서 정훈관으로 근무하며 국가관 교육 등을 담당했다. 정훈관 복무는 내 자신의 투철한 국가관 확립의 원천이기도 했다.

관가에서 내 별명은 ‘카리스마 백’이다. 원래가 뒤끝 없는 성격이고 맡은 업무는 빠르게 추진해 성사해야 성미가 풀리는 터라, ‘카리스마 백’이라는 별명이 나쁘게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내 업무 스타일과 조직 운영 방식은 군에서 쌓은 자신감이 많은 부분 일조했다. 고된 훈련 생활을 통해 내 정신 속에 깊이 새겨진 자신감이 사회에서도 나를 이끄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한 방식으로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아마 그들은 2년의 군 복무 기간을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1社 1병영] 백운찬 관세청장 "관가의 '카리스마 백' 별명은 軍서 얻은 자신감 덕분"
젊은이들에게 병역을 마친다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자기에게 부여된 의무를 다해야만,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병영생활은 대한 남아로서의 자존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특권과 특혜’를 누리기보다는 ‘용기와 희생’을 실천하는 사람이 미래의 지도자가 돼야 우리사회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병영 시절을 결코 희생의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시절 나의 정신적 기조를 뚜렷하게 갖출 수 있었던, 인생의 가르침과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 여기고 있다. 나 역시 군 생활을 기억하면 힘든 훈련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보다 더 큰 인생 교훈을 하나 얻었으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백운찬 < 관세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