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화원 화가인 유숙이 1853년 그린 '수계도권'. 휴머니스트제공
조선후기 화원 화가인 유숙이 1853년 그린 '수계도권'. 휴머니스트제공
이 사람, 참 못생겼던 모양이다.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렸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게다가 성격은 급하고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증까지 있었다. 그런 그에게 평생 고치지 못한 병이 하나 더 있었으니 ‘글짓기 병’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겪으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겼다. 자신이 겪은 일뿐 아니라 보고 들은 것도 붓을 들어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 결과 38책이나 되는 문집 ‘효전산고’를 비롯해 유배지에서 기록한 ‘남천일록’ 20권20책과 ‘산해필희’ 3책, 정치를 논한 ‘정변록’과 역대 야사를 필사한 총서 ‘대동패림’ 등을 남겼다. 부모상을 치를 때 간호와 임종, 뒤처리 과정을 병상일지, 장례기록, 언행기로 따로 기록했고 젊은 시절 상처(喪妻)했을 때도 자신의 슬픔과 고인의 삶을 작품집으로 정리했다.

[책마을] '글짓기병' 걸린 조선 선비 심노숭의 일상 기록서 "찌질한 외모 탓에 오가던 혼담도 쏙 들어가고…"
《자저실기》는 조선 정조~순조 때 문신이자 학자였던 효전(孝田) 심노숭(1762~1837)이 쓴 ‘효전산고’에 실린 내용을 한글로 옮긴 책이다. ‘자저실기(自著實紀)’란 자신이 직접 쓴 실상의 기록이란 뜻. 자신의 용모와 성격·기질, 예술, 한평생 목도한 현실정치와 사회상, 선배들과 동시대 사대부들의 일화와 사건 등을 기록한 당대 일상문학의 정수다.

심노숭은 영·정조 때 노론 시파의 핵심이던 심낙수의 아들로, 명문가 선비였다. 하지만 기록에 관한 한 체면이나 후대의 평가 등을 의식한 자기검열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의 ‘찌질한’ 용모와 치부까지 털어놓았을 정도다. 그는 ‘정욕이 남보다 지나친 면이 있었다. 열네다섯 살부터 서른대여섯 살까지 거의 미친 듯 방종해 하마터면 패가망신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기생들과 놀 때 좁은 골목이나 개구멍도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당쟁이 극심했던 시대여서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판에 대한 폭로와 비판도 생생하다. 자신이 속한 노론 시파의 시각에서 홍국영 김종수 심환지 김귀주 등 벽파 인물들의 행태를 삽화처럼 묘사한다. 노론인 민진원과 이명식, 소론인 이광좌, 남인인 채제공 등이 다른 당파 정승과 병풍을 둘러치고 앉아 국정을 논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정치적 난맥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정객들의 성품이나 술자리 추태, 정치적 술책 등에 대한 묘사도 적나라하다.

미담과 문향 가득한 서정적 사연도 있지만 양반 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단면에 대한 묘사도 많다. 제사에 쓸 떡을 건사하지 못한 계집종을 개와 함께 기둥에 묶어 매질하자 흥분한 개가 계집종을 물어뜯어 살점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 심환지의 사촌 심형지가 권력을 좇다 미쳐서 친딸을 죽인 이야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굶주린 채 길거리에 쓰러진 정주 양반 한형일, 근친상간까지 저지른 명문가 관료들의 타락상, 당파 때문에 부모 형제와도 비열하게 다투는 작태 등도 적나라하다.

본문만 63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각각의 글은 짧은 산문이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