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밖에 안 남았는데…차기 한은총재 '안갯속'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차기 총재는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청와대가 학계와 한은 출신뿐 아니라 관료 출신까지 후보군에 올려놓고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정도뿐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인선이 늦어지는 것일까.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와 신흥국들의 금융 불안으로 국내외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시장은 이런 불확실성을 무척 답답해하고 있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한은 총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처음으로 열린다. 김 총재의 임기 만료 시점은 3월31일. 대통령에게 인사청문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국회 인준까지 최장 30일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 차기 총재를 지명해야 한다. 후보 지명이 늦어질수록 검증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청문회 과정에서 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지난 1일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취임한 재닛 옐런만 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신임 의장 후보로 지명한 것이 지난해 10월9일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혹독한 여론 검증을 거친 결과다. 이 과정에서 당초 오바마 대통령이 강하게 밀었던 후보가 밀려났지만 대신 청문회 과정에선 큰 진통을 겪지 않았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조기에 총재 후보를 압축했는데 우리는 너무 늦었다. 그렇다보니 생산적인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학계-한은-관료’ 3파전

차기 총재 인선에 대해선 기획재정부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차기 총재가 누가 될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자천 타천에 관계없이 항상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콕 집어 뽑는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을 염두에 둔 듯한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온 ‘하마평’을 종합하면 줄잡아 10여명의 후보군을 뽑아낼 수 있다. 학계 출신으로는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부쩍 거론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해 국제금융에 대한 안목을 갖춘 데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보좌관도 거쳤다. 다만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 문제를 일으킨 동양증권 사외이사를 지낸 점이 부담이다.

박 대통령의 경제 교사로 알려진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단골 후보지만 통화정책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인 정갑영 연세대 총장과 박 대통령의 경제 공부를 도운 김인준 서울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등도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린다.

한은 내부 출신에선 박철 전 부총재와 이주열 전 부총재가 언급된다. 한은 내에서 신망이 높지만 2003년 퇴임한 박 전 부총재는 ‘올드보이’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이, 이 전 부총재는 2012년 퇴임 당시 김중수 총재와 불협화음을 빚은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통 한은맨은 아니지만 금융통화위원과 우리은행장을 지낸 이덕훈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 대표도 자주 후보로 거론된다. 관료 출신 중에선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유력 후보다. ‘관치’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임명권자의 부담이다.

○위기 돌파 능력 부각

테이퍼링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점도 차기 총재 인선의 중대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잇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내수 활성화를 생각하면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신흥국 불안과 가계부채를 쳐다보면 금리를 내리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놓여 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지금이 한은에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결정적인 실수를 해선 안 될 뿐만 아니라 한은이 직면한 통화정책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총재가 와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돌파 능력이 굉장히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수 활성화와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경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갖춘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제 감각도 중요한 자질로 꼽힌다. 국제무대나 중앙은행 총재 간 모임에서 ‘말이 통하는’ 총재가 있어야 유사시 글로벌 공조체제를 짜는 데 유리하고 선제적 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용석/김유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