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고려 청자, 부드러운 S라인에 은은한 빛깔 자랑…세계가 탐내는 한류의 원조
송나라 이후 중국인들이 갖지 못해 안달하던 한국 최고의 명품이 있었는데 바로 고려청자였다. 소동파는 고려청자를 고려의 종이와 함께 천하의 명품 열 개에 포함시켰고 북송 휘종 황제의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조공국인 고려에 대해 우월감을 드러내면서도 고려청자만큼은 월주요 정요(도자기 생산지)의 도자기와 비교해 손색없는 명품으로 꼽았다.

청자는 원래 중국인들이 발명한 것이지만 고려가 뒤늦게 이것을 받아들여 본고장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예술품으로 발전시켰다. 고려가 청자를 개발한 것은 10세기 중반인데 당시 전 세계에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송과 고려 단 두 나라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된 17세기 초까지 무려 700여년 동안 자기제조술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18세기가 돼서야 이 비법을 터득했다.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자기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최첨단의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도자기는 크게 도기(陶器)와 자기(磁器)로 나뉜다. 도기는 붉은색이 감도는 진흙을 저온(500~1100도)에서 구워 만들지만 자기는 흰색의 고령토(자토)라는 흙으로 빚은 그릇에 유약을 입혀 1200~1300도의 고온에서 구워야 한다.

유약은 어떤 화학적 추출물이 아니라 나무가 타고 남은 재를 물에 탄 것이다. 이것을 그릇 표면에 발라 고온에서 구우면 놀랍게도 반들반들한 코팅 효과를 얻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구워진 자기는 두드려보면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 도기의 둔탁한 소리와 큰 차이가 있다.
‘청자참외모양병’ (12세기 전반·왼쪽)과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청자참외모양병’ (12세기 전반·왼쪽)과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인들은 처음에는 중국 도자기를 흉내 내기에 급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이 탐낼 만한 독창적인 청자를 만들어낸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1916~1984)는 일찍이 비색, 유려한 곡선미, 상감기법 세 가지를 고려청자의 독창적인 특색으로 꼽았다.

중국인들이 청자의 빛깔을 ‘비색(秘色)’이라고 부른 데 비해 고려인들은 이와는 다르게 ‘비색(翡色)’이라고 자칭했다. 서긍은 “고려 사람들은 고려청자의 빛깔이 푸른 것을 스스로 비색이라고 일컫는데 최근 들어 제작이 더욱 공교해지고 빛깔도 더욱 좋아졌다”고 기록했다. 중국 청자는 녹색이 두드러지지만 고려청자는 은은한 회색빛이 감돌아 담담한 멋을 추구하는 문인 취향에 들어맞았다. 최순우는 이것을 비 갠 후 먼 산마루 위의 “담담하고 갓 맑은 하늘빛”이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형태미도 중국과 달랐다. 고려 인종 장릉에서 출토된 ‘청자참외모양병’은 중국 청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려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중국 청자가 좀 더 직선적이고 강건한 미감이 강조된 데 비해 고려청자는 완만한 구릉처럼 편안한 형태감을 지녀 보는 이의 마음을 기대기에 충분하다.

고려청자의 가장 독보적인 성과는 상감청자다. 그릇을 빚어 건조한 후 칼로 문양을 파내고 그 자리에 자토(검정색 흙)나 백토(흰색 흙)를 메워 넣은 뒤 유약(잿물)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다. 이 기법은 원래 중국에서는 금속공예와 칠기에서 사용됐지만 이것을 자기에 응용한 것은 고려인이 처음이었다.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에 보이는 학과 구름은 바로 상감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송나라 때의 학자인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자신의 저서인 ‘수중금(袖中錦)’에서 고려청자를 세상 사람들이 가장 선망하는 천하제일의 명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백자와 함께 고려청자를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상의 물건으로 치켜세웠다.

그러고 보면 요즘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한류는 오늘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닌 셈이다. 외래문화를 수용해 독창적으로 소화하려 했던 옛사람들의 창조 정신이 면면히 계승돼 오늘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려청자는 한류의 원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미술사학자인 W B 허니가 고려청자를 “인류가 만들어낸 도자기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