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눈썰매장에서 썰매를 즐기는 사람들
자연이 만든 눈썰매장에서 썰매를 즐기는 사람들
설국을 달리는 환상선 눈꽃열차
설국을 달리는 환상선 눈꽃열차
발품은 적게, 겨울의 정취는 제대로! 눈꽃열차에 오르면 추위도 낭만이 된다. 창밖으로 눈길 가는 곳 마다 눈부신 설경이 펼쳐진다. 편안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 내리는 풍경을 보노라면 몸은 훈훈, 메말랐던 마음은 촉촉해져 온다. 소박한 간이역에 들를 때 마다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간다.

기차 타고 떠나는 여정의 즐거움


눈 내린 다음 날 사람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삼삼오오 플랫폼으로 모여들었다. 빙판길 운전 걱정, 붐비는 지하철 출근 걱정은 내려놓고 환상선 눈꽃열차에 오른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추전역, 승부역, 단양역을 지나며 눈꽃이 핀 협곡을 둘러보는 알찬 당일치기 일정이다.

열차는 청량리역을 지나 중앙선으로 머리를 돌린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도심과는 사뭇 다른 설경이 눈길을 끈다. 지붕 위에 논두렁에 개울가에 소복이 쌓인 눈이 정겹다. 흰 눈 사이를 느리게 달리는 기차지만, 열차가 달리면 눈발이 따라 날린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김밥, 과일 등 간식을 나눠 먹으니 옛 기차여행의 추억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밖은 어느새 눈 덮인 산골마을과 탄성을 자아내는 눈꽃 세상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추전역에 발자국을

첫 정차역은 강원도 태백 추전역이다. 해발 855m, 국내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역이다. 8분 동안 4.5㎞의 정암터널을 지나야 추전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드리 싸리나무가 자라는 곳에 세워진 역이라는 뜻으로 연평균 기온이 낮아 겨울이 유난히 긴 곳이다. 열차는 약 20분간 추전역에 정차한다. 마침내 내려서니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역 앞에는 메밀전병, 옥수수 등 정겨운 간식거리 좌판이 펼쳐졌다. 고소한 음식 냄새에 정신이 팔려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 또 하나 있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 매봉산은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분기하는 곳으로 천의봉으로도 불린다. 역 앞 전망대에 서면 눈 쌓인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고랭지 채소단지와 거대한 바람개비 같은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풍경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흰 눈에 눈이 ‘희희’, 입이 ‘낙락’한 승부역


추전역을 출발한 열차는 경북 봉화군 승부역으로 달린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태백준령의 설경이 펼쳐진다. 40분 남짓 만에 도착한 승부역은 기차가 아니면 올 수 없는 오지에 오롯이 서 있는 간이역이다. 밖으로 나서자 하늘에서는 다시 눈이 쏟아진다.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니 소통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고 쓰인 문구처럼 손바닥만 한 하늘을 눈으로 가릴 태세다.

승부역에서 맛 본 양미리구이
승부역에서 맛 본 양미리구이
추전역에서 아쉬운 발도장을 찍고 돌아선 뒤에는 설경을 만끽할 차례다. 세월교를 건너거나 출렁다리를 건너거나 어느 쪽으로 가도 한 폭의 그림 같은 비룡계곡과 비룡산을 마주하게 된다. 눈 덮인 산골이 어느 때 보다 화려한 설경을 품고 있다. 세월교 옆에는 얼음이 얼어 눈썰매장이 펼쳐졌다. 꼬리를 물고 길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어느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깔깔대며 눈썰매를 탄다. 자연이 만든 썰매장은 무료라서 더 좋다.

강 건너 언덕 위에는 먹거리 장터가 열렸다. 한우국밥, 감자전, 두부김치, 양미리구이 등 여행객들의 출출한 속을 뜨끈하게 채워준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마침내 마지막 정차역에 들어선다. 단양역이다. 단양역 앞에는 제법 큰 장터 한마당이 펼쳐졌다. 역전의 가수라도 뽑을 듯 노래자랑도 열렸다. 쿵작쿵작 장단에 맞춰 단양의 특산품을 둘러보며 장도 보고 돌아가는 길. 열차에서 마실 막걸리와 메밀전 등 야식거리도 준비한다. 오늘 하루 참 많이 웃었다. 눈 구경도 원 없이 했다. 행복한 순간이 모여 행복한 여행이 된다면 그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여행팁

겨울 낭만종합선물세트 같은 환상선 눈꽃열차는 2월까지 운행한다. 당일 코스도 여러 가지다. 코레일관광개발 (korailtravel.com)은 오는 14일(금), 22일(토) 서울역을 출발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추전역’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승부역’을 거쳐 인삼과 옛 추억 그대로 고소한 맛이 일품인 정도넛츠로 유명한 풍기를 둘러보는 코스를 선보인다. 가격은 5만4000원. 식사비는 포함돼있지 않다. (02)2084-7786.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