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 베토벤 '월광' 선택한 까닭?
“그동안 음악에 변화가 있었다기보다 변화를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전에는) 잘하는 음악, 편한 음악 말고 새로운 음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욕심이 생겼어요.”

피아니스트 임동혁(30·사진)이란 이름 앞에는 ‘낭만주의 음악의 스페셜리스트’란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그는 지금까지 쇼팽, 프로코피예프, 라벨 등의 낭만적이고 화려한 곡들을 장기로 삼아왔다. 2001년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것을 비롯해 2003~2007년 세계 3대 콩쿠르(차이코프스키·쇼팽·퀸 엘리자베스)에서 모두 입상한 ‘신동’ 이력과 클래식 연주자론 이례적으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것도 이런 이미지를 굳히는 데 일조했다.

그런 그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들고 한국 청중과 만난다. 오는 1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하는 그는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과 바흐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을 선택했다. 그동안 임씨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에겐 다소 낯설 수 있는 선곡이다.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임씨는 “어느 순간 나답게 치는 것에 싫증이 났다”며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낯선 곡이고, 이전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곡들”이라고 말했다.

“제가 잘 연주하지 못하는 곡 가운데서도 좋은 곡이 정말 많더라고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말이죠.”

이번 공연 프로그램 중에서는 베토벤의 ‘월광’을 가장 힘든 곡으로 꼽았다. 그는 “무대 위에서 나도 베토벤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보고 싶었다”는 게 이 곡을 선택한 이유다.

“베토벤은 연주자에게 이성적으로 연주할 것을 요구해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베토벤 연주도 이성을 필요로 하죠. 무대 위에서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저로선 그동안 (이성적 연주에) 자신이 없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Less is more(적은 것이 많은 것)’다. “표현을 줄일수록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더라”는 것이 그의 새로운 깨달음이다.

임씨는 이번에 서울을 비롯해 8곳에서 공연을 한다. 11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14일 노원 문화예술회관, 15일 양산 문화예술회관,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20일 과천 시민회관, 21일 김해 문화의전당, 22일 춘천 문화예술회관, 23일 광주 문화예술회관 등이다. 3만~10만원. 1544-1555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