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양자컴퓨터 (quantum computer)
고대 일본의 쇼토쿠(聖德)태자는 동시에 여러사람의 말을 청취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승려 8명이 동시에 법화경을 설법했는데 강의 내용을 차례차례 풀어냈다는 일화도 있다.

쇼토쿠 태자 수준만은 못 하더라도 여러가지 다른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건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지금 나온 컴퓨터들은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이런 재능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에 도전하는 연구자들은 이 같은 병렬처리 컴퓨터 개발에 심혈을 쏟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가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현대 물리학의 신묘한 세계인 양자적 특성과 불확정성을 이용한 컴퓨터다. 1972년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제안한 이후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컴퓨터의 특성은 정보를 큐비트(양자비트) 단위로 읽는다는 점이다. 기존 컴퓨터는 비트단위로 정보를 읽는다. 1비트라면 0과 1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8비트는 0과 1의 256개 조합이 가능하지만 실제 그중 하나의 값만 선택하며 이를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큐비트는 0과 1의 값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2큐비트는 4개의 조합된 정보를 동시에 선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슈퍼컴퓨터로 100만년 이상 걸리는 암호화 프로그램을 불과 한 시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컴퓨터 정보망에 있는 모든 암호를 풀어낼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무엇보다 판단 능력에서 탁월하다.

지난 2011년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캐나다의 벤처기업 디웨이브(D-Wave)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다. 이미 아마존이나 골드만삭스, 캐나다 정부 등이 디웨이브 지원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이 기업이 만든 1000만달러짜리 양자컴퓨터는 구글과 미 항공우주국(NASA), 록히드마틴과 미 정보기관 등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 구글은 외계인을 연구하고 인공지능 수준의 검색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아예 NASA 에임즈 연구센터에 이 컴퓨터를 이용한 연구소를 차리기도 했다. 지난해 과학잡지 네이처는 디웨이브의 양자컴퓨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물론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를 양자컴퓨터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처리속도가 3600배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판단 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이 양자컴퓨터 시대로 이미 진입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컴퓨터는 인류 문명을 어떤 세계로 인도할 것인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