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처리' 36년 만에…北주민 상속권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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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권 침해 당해도 10년 지나면 소송 못하지만…
6·25전쟁 중 北에 끌려가 딸이 탈북해 유산 소송…南 주민 재산권 침해 논란
6·25전쟁 중 北에 끌려가 딸이 탈북해 유산 소송…南 주민 재산권 침해 논란
민법은 상속권을 침해당했더라도 10년이 지나면 되찾는 소송을 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북한 주민에게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탈북자만 해도 2만5000여명에 달하는 등 남북 간 인적 교류가 늘어나고 있어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남한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판결”이라는 지적도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서영효 판사는 6·25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북에 끌려가 36년 전 실종 처리된 이모씨(1933년생)의 탈북자 딸(45)이 “할아버지 상속분을 돌려 달라”며 친척들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 회복 청구소송에서 “선산 315분의 45 지분 소유권을 이전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 아버지(1961년 사망) 명의의 충남 연기군 선산 5만여㎡는 이씨 실종 선고 이듬해인 1978년 어머니와 다른 자녀들이 상속했다. 그러던 중 이씨가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씨의 딸은 북한을 탈출해 2009년 11월 남한으로 입국했다. 이씨의 딸은 “조부가 재산을 물려줄 때 부친이 살아 있었으니 상속 자격이 있었고 나도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며 2011년 친척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2년 5월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11조는 북한 주민도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언제까지 청구권을 인정해야 하는지와 관련한 조항은 없다. 민법 999조 2항은 상속권을 침해받은 지 10년 이내에 제기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고, 이씨 친척들도 “소송 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달리 판단했다.
서 판사는 “특별법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한의 상속인이 사실상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해 제정됐다고 보인다”며 “따라서 10년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나뉜다. 판사가 입법 취지에 맞게 법을 해석했다는 견해가 있지만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도 10년 제한(제척기간)의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둘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특례법 심사보고서는 “제척기간을 연장하면 남한 주민에게 큰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소급 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에 대한 헌법적 논란도 예상된다”며 “사회적 합의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제척기간 특례를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수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특례법에 관련 조항이 없으면 모법인 민법을 적용하는 게 순리”라며 “남한 주민을 역차별하는 등 문제가 많아 입법자들도 예외 조항을 만드는 데 주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확정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유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서영효 판사는 6·25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북에 끌려가 36년 전 실종 처리된 이모씨(1933년생)의 탈북자 딸(45)이 “할아버지 상속분을 돌려 달라”며 친척들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 회복 청구소송에서 “선산 315분의 45 지분 소유권을 이전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 아버지(1961년 사망) 명의의 충남 연기군 선산 5만여㎡는 이씨 실종 선고 이듬해인 1978년 어머니와 다른 자녀들이 상속했다. 그러던 중 이씨가 2006년까지 북한에서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씨의 딸은 북한을 탈출해 2009년 11월 남한으로 입국했다. 이씨의 딸은 “조부가 재산을 물려줄 때 부친이 살아 있었으니 상속 자격이 있었고 나도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며 2011년 친척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12년 5월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11조는 북한 주민도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만 언제까지 청구권을 인정해야 하는지와 관련한 조항은 없다. 민법 999조 2항은 상속권을 침해받은 지 10년 이내에 제기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고, 이씨 친척들도 “소송 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달리 판단했다.
서 판사는 “특별법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한의 상속인이 사실상 상속권을 박탈당하는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해 제정됐다고 보인다”며 “따라서 10년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나뉜다. 판사가 입법 취지에 맞게 법을 해석했다는 견해가 있지만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특별법 입법 과정에서도 10년 제한(제척기간)의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둘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특례법 심사보고서는 “제척기간을 연장하면 남한 주민에게 큰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소급 입법에 의한 재산권 박탈에 대한 헌법적 논란도 예상된다”며 “사회적 합의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제척기간 특례를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수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특례법에 관련 조항이 없으면 모법인 민법을 적용하는 게 순리”라며 “남한 주민을 역차별하는 등 문제가 많아 입법자들도 예외 조항을 만드는 데 주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확정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유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