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또 하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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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자율성 인정하면서 공평한 기회
정치가 이번엔 국민과의 약속 지키길
김현미 < 국회의원·민주당 hyunmeek@daum.net >
정치가 이번엔 국민과의 약속 지키길
김현미 < 국회의원·민주당 hyunmeek@daum.net >
지난 주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다. 굴지의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딸을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는 아버지와 유족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도움을 청하지만 세상은 그를 외면했다. 노동부, 경찰, 언론, 국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애원하는 아버지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사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의원님은… 안 계시는데요.” 실제 국회는 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해 무효판결이 내려졌다. 5년 전 폭력적인 정리해고 이후 쌍용차에서는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국회는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민을 좌절과 죽음으로 몰아간 것에서 우리 정치는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에서 놀라운 사실을 얘기한다. 최근 100년간의 미국 통계를 분석하여 경제사회적 변수에 따라 자살률과 살인율이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빈곤, 불평등, 실업이 증가하면 자살과 살인이 증가한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건 이런 현상이 미국만의 일이라고 덮어버리기에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번 임시국회를 시작하면서 여야 대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얘기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도 공평성과 사회적 연대를 지향한다. 사회보장제도와 노동규제를 통해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공평’까지 추구하는 독일 경제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여야 대표가 공언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 안에서의 협동’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전환만이라도 다행이다. 세상에 좌절하여 목숨을 끊는 노동자의 절규와 딸의 죽음에 애통해 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안는 정치라도 된다면, 국민과의 ‘또 하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부디 회하를 건너간 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반갑다, 사회적 시장경제’.
김현미 < 국회의원·민주당 hyunmeek@daum.net >
영화에서 아버지는 백방으로 쫓아다니며 도움을 청하지만 세상은 그를 외면했다. 노동부, 경찰, 언론, 국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애원하는 아버지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대사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의원님은… 안 계시는데요.” 실제 국회는 반도체 공장 희생자들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해 무효판결이 내려졌다. 5년 전 폭력적인 정리해고 이후 쌍용차에서는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국회는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민을 좌절과 죽음으로 몰아간 것에서 우리 정치는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에서 놀라운 사실을 얘기한다. 최근 100년간의 미국 통계를 분석하여 경제사회적 변수에 따라 자살률과 살인율이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빈곤, 불평등, 실업이 증가하면 자살과 살인이 증가한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무력감과 수치심이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건 이런 현상이 미국만의 일이라고 덮어버리기에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다.
이번 임시국회를 시작하면서 여야 대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얘기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도 공평성과 사회적 연대를 지향한다. 사회보장제도와 노동규제를 통해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공평’까지 추구하는 독일 경제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여야 대표가 공언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 안에서의 협동’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전환만이라도 다행이다. 세상에 좌절하여 목숨을 끊는 노동자의 절규와 딸의 죽음에 애통해 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아안는 정치라도 된다면, 국민과의 ‘또 하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부디 회하를 건너간 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반갑다, 사회적 시장경제’.
김현미 < 국회의원·민주당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