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케냐에 와 가발사업을 시작한 최영철 사나인더스트리 회장이 들려준 ‘아프리카 스토리’는 파란만장했다. 납치돼 비닐을 쓴 채 외딴 곳에 버려진 적도 있었고, 도둑이 밤새 천장을 뚫고 들어와 금고를 털어가기도 했다. 공무원의 뇌물 요구는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최 회장은 케냐를 ‘비즈니스 천국’으로 묘사한다. 사나는 아프리카 전역에 10개의 공장을 돌리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경쟁사가 생길 수 있다”며 매출을 밝히진 않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시련은 시작된다. 에티오피아 택시엔 벼룩이 들끓는다. 힐튼 하얏트 등 최고급 호텔에서도 얼음을 먹었다가 지독한 장염에 시달리기도 한다.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은 비가 10분만 내려도 시내 전역에 무릎까지 물이 찬다. 나이지리아에선 외국인이 옷을 차려입고 돌아다니다간 강도를 당하기 십상이다. 공무원은 물론 국제기구 직원들도 만나면 ‘뭔가’를 바란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세계 어느 곳보다 성공하기 쉽다는 게 현지 기업인들의 평가다. 워낙 뚫기 힘든 탓에 일단 자리잡으면 경쟁사가 쉽게 진입하지 못한다. 최 회장은 “처음엔 힘들지만 일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면 경쟁사가 끼어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정·관계 실력자들과 연결된 현지 사업자 등을 만나면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꼭 혁신적인 제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워낙 가난한 상태에서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있어 비누 실내화 등 단순 가공품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관료주의와 부패가 심하지만,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이나 총리까지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는 게 에티오피아의 터키 기업인 아이카아디스의 에르칸 투르코글루 대표의 말이다.

크리스티앙 미농구 아프리카연합(AU) 정책자문위원은 ‘부정부패가 심해 한국 기업이 진출을 꺼린다’는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위험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때 아프리카 시장은 이미 다른 나라 기업들 손에 넘어가 있을 겁니다.”

조학희 < 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