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가 동반 급락할 때 글로벌 금융시장의 관심사 중 하나는 신흥국 위기가 과연 선진국으로까지 전이될지였다. 의견이 갈렸지만 시장의 컨센서스는 “선진국은 안전하다”로 모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12일 캐나다달러화가 올해 ‘취약 통화’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더불어 선진 7개국(G7)으로 분류되는 캐나다 입장에서는 신흥국과 ‘동급’으로 분류되는 수모를 겪을 공산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일명 ‘루니화(Loonie)’로 불리는 캐나다달러화 가치는 최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 달러화에 대한 캐나다달러화 환율은 작년 말 1.0620캐나다달러였는데 지난 11일에는 1.1004캐나다달러로 마감했다. 한 달 반 만에 가치가 3.61% 하락한 것으로, 200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유로화 가치는 1.08% 떨어지는 데 그쳤다. 캐나다달러화 가치는 작년 한 해 동안에도 약 9% 하락했다. 로저 할람 JP모간자산운용 외환담당 책임자는 “투자자들이 선물환 시장에서 캐나다달러화 추가 약세에 일제히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나다달러화가 이처럼 약세를 보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우선 캐나다 경제 체력이 최근 몇 년 새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만 해도 3.2%였는데 2011년 2.5%, 2012년 1.7%로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작년 역시 1%대 성장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캐나다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미국 경제가 이 기간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캐나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이 성장률 둔화의 주된 이유였다.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세로 캐나다 국내총생산의 약 6%를 차지하는 원유 수출이 부진했던 것도 성장률 하락에 일조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캐나다달러화 약세를 내심 원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스티븐 폴로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달러화 가치는 수출에 위협이 될 정도로 여전히 강하다”고 밝혔다.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뜻이 전혀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캐나다 내부에서는 급락하는 통화가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토론토 지역신문인 토론토스타는 이날 “과일 야채 TV 자동차 등 모든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가 지갑을 열기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기업들도 캐나다달러화 약세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는 반응이다. 제프 브라운리 캐나다 수출협회 부대표는 “기업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높은 변동성”이라며 “통화 약세가 중·장기적으로 보면 수출에 도움이 되겠지만 최근의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으로 기업들이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