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의 전자가격표시기(ESL)가 서울 독산동 홈플러스 2층 식품매장에 설치돼 있다. ESL은 기존 종이에 표시했던 가격을 디지털 표시로 바꾼 장치다. 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판매나 재고도 쉽게 집계할 수 있다. 윤정현 기자
삼성전기의 전자가격표시기(ESL)가 서울 독산동 홈플러스 2층 식품매장에 설치돼 있다. ESL은 기존 종이에 표시했던 가격을 디지털 표시로 바꾼 장치다. 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뿐 아니라 판매나 재고도 쉽게 집계할 수 있다. 윤정현 기자
330mL 맥주는 3000원, 275mL는 2800원. 원산지가 같고, 맛도 비슷하다면 어느 쪽을 골라야 할까.

12일 찾은 서울 독산동 홈플러스 매장에선 적어도 한 가지 고민은 덜어줬다. 전자장치로 된 가격 태그에 100mL당 각각 909원, 1018원이라는 단가가 명기돼 한눈에 값을 비교할 수 있었다. 맥주캔 아래 일렬로 늘어선 전자가격표시기(ESL)엔 판매가격과 100mL당 단가, 품목 정보까지 표시돼 있다.

ESL을 공급 중인 삼성전기는 앞으로 여기에 색을 입히고 크기를 키워 칼로리와 원산지, 유통기한뿐 아니라 쿠폰 등을 활용한 할인 이벤트 정보까지 담을 계획이다.

대형마트 직원들도 일손을 덜었다. 매일 밤 12시에 매장문을 닫은 뒤 바뀐 가격표를 프린트해 일일이 갈아 끼우던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컴퓨터 시스템에 바뀐 가격을 입력하면 매장 중앙의 천장에 설치된 게이트웨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해당 품목 ESL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판매 상황과 재고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5월 독산동 홈플러스의 2, 3층 식품 및 생활용품, 가전매장에 총 3만5000개의 ESL을 공급해 ‘스마트 매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저전력 무선통신기술인 지그비(Zigbee)를 이용해 중앙서버에서 상품 정보를 관리하고 제품별 태그로 전달한다. 현재 국내 홈플러스 6곳에 시스템이 설치돼 있고 다음달엔 이마트에도 들어간다.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사진)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 대형마트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다. 최 사장은 이날 “이미 전 세계 테스코 매장 400여곳에 설치돼 있고 앞으로도 유럽 시장 공략에 집중할 것”이라며 “올해 예상 매출은 지난해의 두 배 이상인 2000억원 규모고, 3년 내엔 조 단위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주엔 독일에서 열리는 유통전시회 ‘유로숍’에 참석해 유통업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최 사장은 “수요 공급에 따라 바뀌는 가격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 ESL의 최대 강점”이라며 “대형마트들의 기존 SI시스템에 우리 솔루션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내 소프트웨어까지 자체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가 ESL에 공을 들이는 것은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출 신사업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카메라모듈과 회로기판, 적층세라믹콘텐서(MLCC) 등에서 매출의 절반 이상을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다. 스마트폰 수요 둔화 여파에 삼성전기는 지난해 4분기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전기는 적극적인 ESL 시장 개척을 통해 대형마트와 백화점, 편의점 등 유통매장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병원이나 도서관 등으로 공급처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 사장은 “당장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파이를 키우는 데 먼저 주력할 것”이라며 “ESL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