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종합상사
종합상사 하면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이쑤시개에서 인공위성까지’ 같은 슬로건이 연장된다.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이토추상사는 최대 3만종의 상품을 취급한 기록을 갖고 있다.

종합상사는 이름 뒤에 주로 ‘물산(物産)’ ‘상사(商社)’가 붙는다. 일본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이나 한국의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등이 그렇다. 한국의 어떤 전직 장관은 별명이 ‘OO물산’인데, 오지랖이 워낙 넓었던 탓이었다.

종합상사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업형태다. 구미의 무역회사(trading company)는 대개 특정 품목을 취급해왔다. 일본 종합상사(sogo shosha)는 1870년 메이지유신 이후 등장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범(戰犯)기업으로 지목돼 해체됐다 50년대 부활했다. 일본 종합상사들은 한때 포천지(誌) 선정 100대 기업의 1~3위를 독차지했다. 지금도 연간 매출이 100조~200조원에 달하고, 순익 10대 기업 중 4개가 종합상사다. 입사 5년차 연봉이 1억원을 넘어 여전히 인기 직장이다.

한국의 종합상사는 1975년 수출액이 전체 수출의 2% 이상인 상장기업을 종합상사로 지정하면서 본격 등장했다. 이른바 7대 종합상사가 생겨났고, 80년대엔 전체 수출의 50%를 담당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의 해외 직수출이 늘면서 고난의 시기를 맞았다.

일본에선 이미 70년대 ‘상사 사양론’, 80년대 ‘상사의 겨울시대’, 90년대 ‘상사 무용론’이 연이어 제기됐다. 한국도 외환위기 이후 부채가 많은 종합상사가 집중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주)대우 현대종합상사 (주)쌍용의 주인이 바뀌었다. 현재 수출비중은 2~3%에 불과하고, 2009년엔 아예 종합상사 지정제가 폐지됐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80~90년대 돌파구로 찾은 게 자원개발이다. 2000년대 들어 원자재값 폭등과 맞물려 큰 재미를 봤다. 그러나 이런 트렌드도 확 바뀌는 모양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지난해 비(非)자원 부문 순익이 전체의 57%를 차지, 10년 만에 자원 부문을 앞질렀다.

원자재값이 약세로 돌아서자 브라질 식량개발, 동남아 부동산 사업, 비행기·선박 리스업까지 진출하고 참치양식, 병원운영 등 닥치는 대로 다각화한 결과다. 수시로 변신하는 아메바처럼 종합상사가 이제는 ‘만능회사’가 된 것이다.

반면 뒤늦게 자원개발에 뛰어든 한국 종합상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변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종합상사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