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기쁨', 5년 만에 무대 복귀한 추상미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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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이사벨은 직장 동료이자 애인인 어윈,환경부 차관인 언니의 보좌관인 론다와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공항으로 향한다. 목적지 없이 첫 항공편을 잡아 타고 도착한 곳은 스페인 휴양지 란사로테 섬. 이사벨은 발가벗고 해변을 거닐며 자유를 느낀다. 충동적인 현실 도피가 가져다주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그녀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을 위해서,무엇을 붙잡고 살아갈까.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은밀한 기쁨’(원제:The Secret Rapture)의 중후반부, 막과 장으로 따지면 2막2장쯤에서 이사벨은 형부와 언니에게 독백처럼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떠안게 된 의붓어머니인 알콜중독자 캐서린, 사업 확장을 강요하며 세금 포탈을 위해 이사벨을 이용한 언니 부부, 이사벨을 사랑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현실적인 이익 앞에 그녀의 마음을 배신한 어윈. 이들과 충돌하며 묵묵히 자신의 선의와 정직함을 지키려 애쓰는 이사벨의 심경이 가슴 절절히 파고든다.
‘에이미’로 국내 연극팬들게 친숙한 영국 극작가 데이빗 해어가 1988년 발표한 이 작품은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가치관의 충돌과 집착, 탐욕으로 인간들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린 사실주의적 정통 연극이다. 작품을 연출한 김광보 연출가는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체호프와 입센을 결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감정과 대사와 달리 인물들의 심리가 다변적이고 복합적이라는 면에서 체호프, 정치적 주제를 가족 드라마로 교묘하게 포장한 극작술은 입센을 닮았다는 설명이다.
공연은 대처리즘을 조롱하는 정치적인 색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체호프 분위기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 인간의 속물성과 허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난다.
5년만에 무대에 복귀한 추상미(이사벨)가 단연 돋보인다.양식화된 연극적 연기가 아니라 일상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 이사벨의 ‘은밀한 기쁨’을 알듯 모를듯,은밀하게 드러낸다고 할까.몰입도 높은 연기와 집중력이 알쏭달쏭한 캐릭터를 쉽게 다가오게 했다.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인물에 집중하는 김광보 특유의 연출이 배우들의 연기를 한껏 살린다. 공연은 내달 2일까지,3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은밀한 기쁨’(원제:The Secret Rapture)의 중후반부, 막과 장으로 따지면 2막2장쯤에서 이사벨은 형부와 언니에게 독백처럼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떠안게 된 의붓어머니인 알콜중독자 캐서린, 사업 확장을 강요하며 세금 포탈을 위해 이사벨을 이용한 언니 부부, 이사벨을 사랑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현실적인 이익 앞에 그녀의 마음을 배신한 어윈. 이들과 충돌하며 묵묵히 자신의 선의와 정직함을 지키려 애쓰는 이사벨의 심경이 가슴 절절히 파고든다.
‘에이미’로 국내 연극팬들게 친숙한 영국 극작가 데이빗 해어가 1988년 발표한 이 작품은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가치관의 충돌과 집착, 탐욕으로 인간들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린 사실주의적 정통 연극이다. 작품을 연출한 김광보 연출가는 희곡을 처음 접했을 때 “체호프와 입센을 결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감정과 대사와 달리 인물들의 심리가 다변적이고 복합적이라는 면에서 체호프, 정치적 주제를 가족 드라마로 교묘하게 포장한 극작술은 입센을 닮았다는 설명이다.
공연은 대처리즘을 조롱하는 정치적인 색채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체호프 분위기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 인간의 속물성과 허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난다.
5년만에 무대에 복귀한 추상미(이사벨)가 단연 돋보인다.양식화된 연극적 연기가 아니라 일상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 이사벨의 ‘은밀한 기쁨’을 알듯 모를듯,은밀하게 드러낸다고 할까.몰입도 높은 연기와 집중력이 알쏭달쏭한 캐릭터를 쉽게 다가오게 했다.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인물에 집중하는 김광보 특유의 연출이 배우들의 연기를 한껏 살린다. 공연은 내달 2일까지,3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